CNN 기자 "北관계자들 놀랄 만큼 절제된 모습…회담 개최 원하는 듯 했다"
"풍계리갱도 축구공 크기 폭발물로 폭파…완전파괴 불투명"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됐던 첫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사실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차 방북 중인 외신기자단에도 전파됐다고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미회담 전격 취소를 발표한 시간 외신기자단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CNN은 "북미회담 취소 사실이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돌아가던 외신기자단에도 전달됐다"면서 이 같은 소식이 외신기자단에 충격을 줬다고 전했다.

CNN은 어떤 경로를 통해 외신기자단에 회담 취소 소식이 전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외신기자단에 포함된 CNN 기자가 열차에서 전화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소식을 보도한 점에 미뤄 전화통화를 통해 전달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CNN은 외신기자단과 함께 열차에 있던 북측 인사들도 어색하고 불편한 반응을 보이며 상부에 전화로 보고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은 예상과 달리 절제된 모습이었다고 취재를 위해 방북한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전했다.

리플리 기자는 "북한인들이 좀 더 격앙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라울 만큼 절제된 모습이었다"며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누군가와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리플리 기자는 "그들은 이 상황이 북미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며 그래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6월 12일이 아니더라도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듯이 들렸다"고 말했다.

리플리 기자는 또 북측 인사들이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몇 시간이 지난 뒤 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알게 됐다며 "매우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외신기자단에는 남측 취재진과 미국·영국·중국·러시아 4개국 취재단이 포함됐다.

앞서 CNN은 원산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전화 연결을 통해 당일 갱도 폭파 방식으로 진행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소식을 전했다.

리플리 기자는 핵실험장의 3개 갱도와 부속 건물을 북측이 폭파했다면서 폭파 후 갱도가 무너지고 잔해들이 터널 입구를 메웠다고 보도했다. 그는 폭파에 앞서 북측이 갱도 앞까지 외신기자단의 접근을 허용하고 갱도에 설치된 문을 열 수 있도록 했고, 갱도 안에는 폭발물이 설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북측은 갱도 안의 출입은 막았다.

리플리 기자는 북측이 2006년 1차 핵실험 때 사용한 갱도(동쪽 1번 갱도)는 이미 폐쇄했다고 밝혔다면서 2번(북쪽) 갱도를 포함해 총 3개 갱도가 폭파됐다면서 북측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2개의 갱도도 보여줬다고 전했다.

리플리 기자는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갱도가 완전히 붕괴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이에 대해 북측 관계자에게 물었으나 "여러분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 아니냐"는 답변만 했다고 전했다.

CNN은 작성한 별도의 기사에서 현장에 초대된 외부 핵 전문가는 없었다면서 "폭파가 갱도를 다시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했는지, 단지 제한적인 손상만 가했는지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또 폭파 전 갱도에 설치된 폭발물에 대해서는 '축구공' 크기와 모양의 폭탄들이 연결돼 터널 입구에서부터 약 35m 지점에 설치돼 있었다고 전했다.

영국 스카이뉴스의 마이클 그린필드 프로듀서도 트위터에 "북한 측이 갱도를 폭파하기 전 우리에게 터널 안을 보여줬다"며 갱도에 설치된 폭발물 장치를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그린필드는 "(사진을 보면) 그들이 폭발물을 어떻게 설치했는지 볼 수 있지만 얼마나 깊이 폭발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린필드는 앞서 올린 트윗에서는 "9시간에 걸친 풍계리 취재를 마치고 12시간이 걸려 호텔로 돌아왔다"며 풍계리 핵실험장 현지 모습과 기차역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러시아 관영 뉴스 전문채널 RT의 이고리 즈다노프 기자도 트위터에 갱도 폭파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을 올리며 취재 과정을 설명했다.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