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땀 흘린 후 한기들 우려" VS 학부모 "프라이버시 간섭"
전문가, "여아 발육상황 모르는 남성이 만든 교칙"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체조복 속에 속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일본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한창인 가운데 일부 초등학교의 이런 교칙이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학교 측은 속옷을 입은 채 땀을 흘리면 몸에 한기가 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자아이의 가슴 등 신체가 비쳐 보일 것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왜 어린이의 프라이버시에 까지 간섭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트위터에 "속옷 착용을 금지하는 이유가 뭐냐", "이건 성적 학대 아니냐"는 한 여자 어린이 엄마의 글이 올라온 것을 계기로 "우리 애도 그렇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는 등 큰 반향이 일고 있다.

"옷갈아 입는데 시간이 걸리니 속옷을 벗고 갈까". 도쿄도(東京都)내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의 엄마(39)는 5월 초 딸 아이가 운동회 아침 연습에 나가기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물은 끝에 큰 딸이 다니는 구립(區立)초등학교에는 체조복을 입을 때 속옷을 벗도록 하는 교칙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여자 아이인데 체조복 한겹만 입는 건 걱정"이라고 담임에게 이야기하고 교장에게도 교칙이 이상하다는 뜻을 전했다.

담임선생은 "땀을 흘리면 몸에 한기가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교장은 "땀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다른 이유를 댔다.

결국 교칙은 폐지되지 않았다.

동급생 여자 아이 중에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어린이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체조복 차람의 여자아이 사진을 모아 놓은 사이트도 더러 눈에 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전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의 신체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왜 학교가 사적인 영역에까지 간섭하느냐"며 분개하고 있다.

교복과 체조복 메이커 간코(菅公)학생복(오카야마시 소재)이 작년 3월 도쿄도와 가나가와(神奈川)현 거주 초등학생을 둔 엄마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4.4%가 "브래지어나 속옷 착용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아사히 신문이 이런 교칙이 있는 복수의 학교에 문의한 결과 1학년 때 어린이에게 교칙을 가르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무관청인 스포츠청은 "그런 규칙을 두도록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며 교칙이 엄한 정도도 학교에 따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도내에 있는 한 공립초등학교는 "원칙적으로 완전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브래지어가 필요해진 고학년 여자아이의 경우 '스포츠 브래지어' 착용을 허용한다고 한다.

다른 공립초등학교 교감은 전에 있던 학교에서 수영수업 시간에 수영복 차림의 어린이가 몰카에 촬영당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4학년 때 교사가 여자 어린이에게 체조복 속에 속옷을 입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인 미야하라 아쓰시(46)는 "여자 어린의의 발육상황을 잘 모르는 남성이 만든 규칙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속옷을 입을지 말지는 운동을 하는 계절이나 운동내용, 개인의 기호나 아토피 등 의학적 이유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남녀에 관계없이 속옷을 입고 싶은 싶은 사람은 입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역시 소아과 의사인 모리토 야스미(47)도 "초등학생들은 '교칙은 절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땀을 흘리면 몸을 닦든가, 속옷을 가져와 갈아 입게 하면 된다. 어린이에게도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관리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결여된 것 같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