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라고 해서 꼭 90분을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다 게이스케(32·파추카)는 일본에서 존재감이 가장 뚜렷한 선수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A매치 97경기 경력은 곧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 23세에 CSKA모스크바로 이적했고, 이후 AC밀란에서 활약하며 후배들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30대가 되면서 혼다의 기량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일본엔 유럽서 활약하는 재능 있고 활기 넘치는 선수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혼다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급기야 주전에서 밀려났다. 대신 니시노 아키라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혼다를 조커로 활용하고 있다. 조별리그 1차전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혼다는 후반 25분 카가와 신지를 대신해 피치를 밟았다. 혼다 투입 전까지 수적 우위를 활용하지 못하던 일본은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고, 결국 승리했다. 25일(한국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2차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혼다는 카가와와 교체됐다. 1-2로 뒤진 후반 27분 들어가 33분에 결승골을 터뜨렸다. 골대 앞에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해 일본에게 소중한 승점 1점을 안겼다.

감독의 선택과 선수의 존중이 합작한 성공이다. 사실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하고 여전히 일본 최고의 스타인 혼다가 ‘조커’라는 역할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본에서 혼다를 능가할 만한 존재감을 가진 선수는 아직 없다. 자칫 감독이 일방적으로 출전 시간을 줄이면 불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많은 팀들이 베테랑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다. 쉽게 빼지도, 넣지도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다는 겸허하게 팀 현실을 인식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존심 대신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세네갈전 이후 혼다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체 선수로 경기를 준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라며 “하지만 나는 지금 월드컵을 치르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당연히 어떤 역할이든 해야 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있어도 일본이 골을 넣으면 기쁘다. 다른 선수들이 먼저 뛰어나가 내 기쁨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세네갈전 득점으로 혼다는 월드컵 3회 연속골에 성공한 첫 일본인이 됐다. 더불어 총 4골로 박지성과 안정환(이상 한국), 팀 케이힐(호주), 사미 알 자베르(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역대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다골의 주인공에 등극했다. 이타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베테랑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발상의 전환이 만든 성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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