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원장 바라는 바 이뤄주겠다' 트럼프 발언에 金 반응 주목
전문가 "남북정상회담 북미관계 도약에 중요…정상 신뢰·논의 봐야"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체된 한반도 정세를 움직일 남북미 3국의 '톱다운'(Top down·정상간에 합의한 뒤 실무진에서 후속협상을 하는 방식) 외교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북미 고위급회담이 한 차례 연기되면서 일정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황에 한미 정상 간 논의가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에 동력을 제공하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국면을 연결시킬지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내 기자 간담회 내용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남은 합의를 다 마저 이행하기를 바라고,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겠다"는 메시지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언론에 내년 1∼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구상도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한반도 '톱다운' 외교가 다시 시도되는 형국이다. 지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진 3국 정상의 '결단'이 다시 협상을 이끄는 모양새인 것이다.

'바라는 바를 이뤄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이 중심이 되는 고위급·실무 협상이 정체된 상황을 지도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돌파하자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메시지는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 조치에 나설 경우 미국도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강하게 요구하는 대북제재 해제·완화 역시 북한의 비핵화시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에 포함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문 대통령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신뢰'의 메시지를 건넨 셈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일부 공개된 상황에서 이후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보다 구체적 메시지가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메시지에 김 위원장이 호응하면서 비핵화 조치 추진에 보다 전향적 태도를 보일 경우 북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1차적 관심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메시지에 호응할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겠다'고 했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현 단계에서 확인된 것은 대북제재의 유지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기존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한미 정상은 의견을 함께했다.

미국의 기류에 비춰 그 입장이 조기에 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만큼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를 꺼낸 김 위원장이 상응조치의 높이를 낮추거나, 제재 완화를 끌어낼 핵신고와 검증, 보유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폐기 등에서 추가적 조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중심이 되어 내놓을 수 있는 '한미군사훈련 연기·축소', '인도적 대북 지원', '스포츠·예술 교류' 등이 북한에 얼마 만큼의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이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내 놓는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남북 정상회담→북미 고위급회담→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아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의 '밑그림'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위원장이 '제재 유지' 기조에 반발하며 '트럼프 메시지'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내년 1∼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거론했지만 그 회담의 내용을 채울 비핵화 조치 측면에서 미국이 '바'를 낮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연기되고 있는 북미 고위급 회담과 실무회담을 어떻게 돌파해서 정상회담으로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이 북미관계 도약에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줬다. 톱다운 방식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며 "고위급·실무·정상 회담의 수순에 갇히기보다 정상 간 신뢰를 통해 협상이 진전되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다만 "실무자 수준으로 자주 정상회담을 할 수는 없는 만큼, 양 정상이 계속 소통할 수 있는 (북미 간) 핫라인을 서둘러 구축해야 톱다운 방식의 신뢰도와 효용성을 배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관건은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답방할 경우 같은 수준의 이야기에 머물 수 없으니 비핵화 조치 측면에서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이어 "김 위원장 답방을 통해 비핵화 진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데 북한이 그 정도로 준비됐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우리가 북한의 전향적 변화를 촉구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