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지를 대한항공 해외지점으로 기재…지점은 인천공항으로 물품 배송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10년 가까이 개인물품 밀수에 대한항공 항공기와 직원들을 개인물품 밀수에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본부세관이 27일 공개한 수사 및 감찰 결과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 조현아(44) 대한항공 전 부사장, 차녀 조현민(35) 대한항공 전 전무 등 한진가 세 모녀의 밀수 행각은 2009년 4월부터 의혹이 불거진 올해 5월까지 무려 10년간 260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세관이 이들의 해외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면세점 구매실적 등을 분석해 파악한 해외 명품, 생활용품 등 밀수품은 1천61점으로 1억5천만원어치에 이른다.

또 2013년 1월부터 작년 1월까지 30차례에 걸쳐 대한항공이 수입하는 물품인 것처럼 허위로 신고하는 수법으로 들여온 가구·욕조 등 물품도 132점(시가 5억7천만원 상당)에 이른다.

조 전 부사장의 경우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품의 배송지를 대한항공 해외지점으로 기재했다. 해당 지점은 물품을 받으면 이를 대한항공 소속 사무장에 건네 국내로 반입하거나 부피가 큰 물품은 위탁수하물로 항공기에 실어 인천공항으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이사장이 대한항공 해외지점에 유명 과일이나 그릇 등을 사도록 지시하면 이 역시 대한항공 회사물품으로 둔갑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뒤 총수 일가 운전기사 등을 통해 본인에게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 전 전무는 프랑스에서 선물 받은 고가의 반지와 팔찌 등을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반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한진 총수 일가가 부담했어야 하는 관세와 운송료 등 2억2천만원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 모녀의 밀수품과 허위신고 물품 중에는 시가 1천600만원짜리 명품 가방과 1천200만원짜리 반지, 3천200만원대 소파 등도 포함됐다고 세관은 설명했다.

이들과 같은 관세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된 대한항공 직원 2명은 총수 일가의 밀수입 지시와 업무연락, 배송 현황 파악, 국내 운반, 전달 등을 맡았다.

당국은 인천공항에 근무한 세관 직원들이 장기간 수백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들의 밀수 행각을 돕거나 눈 감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범죄에 직접 개입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형사 입건된 대한항공 직원과 자주 통화한 세관 직원 3명에 대해 감찰 조사를 벌였지만 이 중 2명이 대한항공 물품 반입과 관련해 검사를 소홀히 하거나 동료 세관 직원에게 총수 일가 물품 검사와 관련해 편의를 요청한 사실이 확인돼 입건은 하지 않고 징계 처분만 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유착 의혹을 받은 직원 3명의 주변 직원 44명도 대면조사하고 연루 가능성이 있는 일부에 대해 추가 감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본부세관 관계자는 "한진 총수 일가는 장기간 밀수를 통해 정상적으로 통관 절차를 밟았을 경우 물품 구매가격의 25%가량인 관세, 부가세, 특별소비세 등을 내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 "인천공항 세관직원과 관련된 수사내용은 검찰이 다시 검토할 수 있도록 수사자료 일체를 송치했다"고 말했다.

인천본부세관은 이번 사건 적발을 계기로 올해 하반기부터 항공사 의전팀 등의 비공식 의전을 통한 휴대품 대리운반을 전면 금지했고 승무원과 항공사 직원 등에 대한 검사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