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류현진(LA 다저스·32)과 '파이널 보스'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37)이 나란히 '변화구 향상'을 스프링캠프 과제로 삼았다. 가능한 많은 구종을 구사해 다양한 레퍼토리로 타자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최첨단 장비가 그라운드 곳곳에 설치되고 실시간으로 투수의 구종을 비롯한 대량의 데이터가 집계되면서 다양한 볼배합을 강조했다.
그야말로 데이터 전쟁이다. 타자는 경기 중 태블릿 PC를 통해 바로 전 타석에서 투수가 던진 모든 공의 구속과 구종, 로케이션, 무브먼트 등을 확인한다. 더불어 투수와 통산 맞대결 데이터를 손에 넣고 바로 다음 타석에 대비한 전략을 세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상대 타자의 로케이션에 따른 핫존과 콜드존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자신과 대결에서 어느 코스, 어느 구종에 강하고 약했는지 신속하게 인지한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대결은 마치 오픈북 시험 같다.
그만큼 효과가 있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 마지막 콜로라도전에서 강타자 놀란 아레나도를 상대로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봉인했다. 아레나도와 만날 때마다 체인지업이 난타당했던 것을 고려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볼배합을 펼쳐 아레나도의 장타를 억제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랬다. 상대 강타자의 핫존과 콜드존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콜드존으로 로케이션을 집중했다. 경기 전 전력분석 미팅에서 나온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며 필승전략을 세웠다. 시속 160㎞짜리 강속구도 장타로 연결하는 빅리그 강타자를 상대로 단순한 볼배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힘과 힘의 대결을 넘어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진다.
때문에 류현진은 파이브피치, 오승환 포피치로 진화를 노린다. 류현진은 지난 16일 불펜피칭에서 2015시즌 어깨 부상 이후로 거의 구사하지 않던 슬라이더를 꺼내들었다. 그는 "5가지 구종을 모두 던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구종이 많아야 타자를 상대하기 수월하다. 타자도 생각이 많아 질 수 있다. 하나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여러가지를 던지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며 직구, 체인지업, 커브, 컷패스트볼, 슬라이더를 모두 던지는 파이브피치를 예고했다.
오승환 또한 17일 불펜피칭과 라이브피칭에서 변화구를 집중점검했다. 특유의 돌직구를 접어두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골고루 던졌다. 오승환은 "타자의 성향에 따라 구종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다양한 구종을 생각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타자들도 데이터를 많이 본다. 매 이닝 상대 투수가 자신에게 어떤 공을 던졌는지 확인한다. 때문에 투수도 타자에게 생소한 구종을 정확하게 던지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올해는 포수와 얘기도 하고 데이터도 보면서 변화구를 적절하게 섞어보겠다"고 다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확실한 구종 두 가지만 있어도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특히 중간투수에게 포피치를 요구하는 지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타자들의 힘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무려 1만1690개의 홈런(2017시즌 6105개, 2018시즌 5585개)이 터졌다. 2013시즌에 4661개의 홈런이 터진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홈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데이터를 무시한 정면승부로는 홈런을 피할 수 없다. 류현진과 오승환의 변화구 연마는 데이터 전쟁이 기반이 된 '홈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피닉스|윤세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