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공기 통해 전염…서방여성 접촉 많은 특권층 여성들 속박 더 못견뎌해
감금·폭행·죽음 무릅쓰고 탈출 모색해도 여권 빼앗겨 외부단체도 속수무책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 연방국가인 두바이의 지배자이자 UAE의 총리인 셰이카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딸 라티파(33)는 지난해 2월 수년간의 비밀 준비 끝에 조력자의 배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하려다 인도양 상에서 붙잡혀 송환됐다.

라티파 공주는 이미 16세 때도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3년 넘게 독방에 갇힌 채 수시로 침대 밖으로 끌어내려져 폭행을 당한 전력이 있다.

라티파는 자신이 14세 때일 때 언니 샴사 공주가 영국에 여행 간 길에 경호원의 눈을 피해 잠적했으나 결국 다시 붙잡혀 이후 약물로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보고 2년 후 1차 탈출을 시도했었다.

라티파는 2차 탈출 결행 직전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나는 이미 죽었거나 매우 매우 매우 나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라며 "내가 살아서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영상은 남겠지요"라고 말하는 내용의 영상을 찍어뒀다.

라티파의 실종 후 이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제 비판 여론에 몰린 두바이 당국은 지난해 12월 33세 생일 기념 사진이라며 라티파의 사진 몇장을 내놓았으나, 지인들은 사진 속 라티파가 흐리멍덩해 보인다며 약물 주입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는 20일(현지시간) 라티파가 가족들에 의해 약물 처방 상태로 가택연금돼 있다고 전하면서 라티파의 영상은 아랍 공주들과 특권층 여성들의 "숨겨진 삶을 엿보게 해주고, 동화상의 공주 이미지와 다른 엄혹한 현실을 비춰준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지난 2013년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당시 국왕의 네 딸이 런던에 본부를 두고 아랍 세계의 여성 속박을 탈출하려는 여성들을 돕는 단체인 ALQST의 야히야 아시리 국장을 접촉, 탈출 방법을 문의했다.

아시리 국장은 당시 이미 가택연금 상태이던 이들과 접촉선을 유지했지만, 살만 국왕이 승계한 이후 모두 끊겨버렸다. 딸들의 탈주를 도우려던 어머니와도.

지금도 아시리는 사우디 왕가의 다른 공주들로부터 탈출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계속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 모두 남성 후견인들에게 여권을 빼앗긴 상태여서 도울 길이 별로 없다는 것.

라티파 공주의 실패가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도 서방의 자유를 찾아 호화로운 생활과 특권을 내던지고 탈출을 감행, 천신만고 끝에 캐나다로부터 망명 허가를 받아 지금은 캐나다에서 새 삶을 누리는 행운을 누린 사우디 여성도 있다.

지난 1월 호주로 망명하려다 경유지인 태국에서 억류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송환되면 죽는다며 도움을 호소해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던 사우디의 10대 소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18)이다.

머리카락을 장래 남편감들이 좋아할 길이보다 짧게 잘랐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때까지 집에 갇히기도 했던 무함마드는 망명지인 캐나다에서 "내게 돈은 있되 자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역시 일반 가정 출신이 아니라 사우디 북부의 술라이미주 지사의 딸이다.

남편이나 아버지, 아들이 여성의 외출 등 모든 활동을 통제하는 사우디의 후견인 제도는 강도는 덜 하지만 UAE에도 있다.

아랍 세계의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속박과 가정 폭력은 대부분의 아랍 여성들이 겪는 시련이지만, 왕가 등 특권층 여성들이 더욱 못 견뎌한다.

특권층 여성들은 미디어나 사립학교, 해외 친척 방문, 궁정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등을 통해 서방 여성들의 삶에 일반 여성들보다 더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사우디의 저명한 여성운동가이자 학자인 할라 알 도사리는 분석했다.

그들에게 부는 하고 싶은 공부, 운전, 결혼 상대와 시기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속박에 대한 위안이 될 수 없다는 것.

라티파 공주는 자신의 영상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기분일까"라며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햄버거를 구우면서 살아도 좋겠다"고 밝혔다.

라티파와 무함마드의 탈출 사건은 두바이와 사우디의 국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었지만, 두 나라 정부 당국엔 국내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포린 폴리시는 지적했다.

사우디 언론들은 무함마드의 망명 사건을 감추기보다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외국 정부가 사우디 여성들을 이용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몰고 갔다. 또,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버리는 배교를 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슬람에서 배교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

사우디 보수층은 사우디 정부가 여성에 대한 후견인 제도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무함마드 사건은 "이 지역 가정을 뒤흔들어 놓았다"고 포린 폴리시는 전하고 "일부는 자신들의 딸을 잃지 않기 위한 예방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에 있는 무함마드에 연락을 취하는 친구들과 다른 여성들은 자신들의 여권을 가족에게 모두 빼앗겨 다시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는 것.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