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너희 애는 너희가 키워라"

[뉴스포커스]

손자·손녀 양육 놓고 딸·아들과 갈등 빈발
예전과 다른'노인 세대', 제 2의 인생 구가

"100세 시대…더 늦기 전에 내 생활 찾고파"

# "엄마 나 오늘 애 좀 봐줘. 응? 이따 밤에 데리러 올게." 올해로 60세가 된 김영숙(가명)씨는 다 키워 시집 보낸 딸이 이제는 손자를 봐달라고 하는 탓에 골머리를 앓는다. 김씨는 "일주일에 3일은 골프, 2일은 동호회 모임, 남는 시간에 친구들과 티타임을 하다보면 손주들 봐줄 시간이 어딨냐"며 "나 살기도 바쁜데 나이 먹고까지 애를 보기는 싫다"고 언성을 높인다. "그래도 내 손주니 반나절 정도는 봐주겠지만 나도 내 인생이 있는데 그 이상은 힘들다"고 김씨는 말한다.

100세 시대에 자식을 출가시키고 다시 시작되는 나만의'제 2의 인생'을 즐기는 조부모들이 최근 늘고 있다. 이제 더이상 하루종일 손주들의 양육까지 뒤치닥거리하는 삶이 싫은 것이다. 자신의 일과 여가를 즐기며 인생을 사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조부모들이 예전처럼 방구석에 앉아 손주들을 봐주는 일은 더이상 당연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됐다. 피치 못할 상황에 자녀들을 돌보아 준다고 해도 조부모와 자식간의 양육방식에 대한 차이는 가정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결혼 3년차 신랑과 맞벌이를 하는 최민영(가명)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4개월 뒤부터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최씨는 "너희 불쌍해 맡아주는거지 뭐든 잘못 되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하기가 싫어진다. 나도 친구들과 여행 다니면서 쉬고 싶은데 차라리 나가서 따로 살겠다"는 얘기를 최근 친정 엄마에게 들었다.

최근 쌍둥이를 낳은 김은영(가명)씨는 남편이 일을 가고 나면 혼자서 육아를 독박하는 탓에 부모님 옆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김씨 어머니는 이에 펄쩍 뛰며 "나도 돈벌러 나가야 하고 쉴 때는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은데 자식이랑 가깝게 살면 애도 봐줘야 하고 밑반찬도 갖다 나르고…다시 시집살이 하는 것 같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제는 조부모가 양육을 기피하는 추세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손주들의 양육을 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조부모의 손주 양육방식을 놓고 자식들과 갈등을 빚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인가정상담소 임해나 카운슬러는 최근 조부모와 자식이 손주 양육 과정에서 갈등을 겪은 사례를 소개했다.

이희영(가명)씨는 결혼한 아들을 둔 홀어머니다. 이씨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맞벌이 아들 내외의 손주들을 봐준다. 넷이나 되는 손주들을 이씨 혼자 일을 하며 돌보기엔 역부족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주들과 가끔은 언어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너무 다른 문화 차이에 교육 방법이 달라 아들 부부와 가끔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씨는 "일하느라 바쁜 아들 내외가 딱해서 애를 봐주지만 애를 봐줘도 욕을 먹는 상황이다"며 "이렇게 하면 안된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 너무 옛날 방식이다"며 아들 내외의 잔소리를 듣는다고 푸념한다. 이씨는 "가끔은 정말 다 때려치고 도망가고 싶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재 한인가정상담소에서는 아동보호국이 지원하는 '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위한 심리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LA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18세 이하의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문의:(213)389-6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