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 명령 묻자 "왜 이래" 고함…법정서 신원 확인 후 '꾸벅꾸벅'
"5·18 헬기사격 없었다" 검찰 공소사실 전면 부인…시민 항의속 상경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천정인 기자 =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다.

전씨는 5·18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이나 헬기 사격에 대한 질문을 외면하거나 전면 부인해 법정 안팎에 있던 광주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것으로 알려진 전씨는 11일 오전 승용차를 타고 서울 자택에서 광주지방법원까지 이동했으며 경호원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법원으로 들어갔다.

전씨는 경호원의 제지를 받던 취재진이 손을 뻗어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의 몸이 밀리자 "왜 이래"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전씨의 공판기일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1시간 15분간 진행됐다.

전씨는 재판장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과정에서 "재판장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고 헤드셋을 쓰고 다시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았다.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에서도 헤드셋(청각보조장치)을 쓴 채 생년월일과 주거지 주소, 기준지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 모두 "네 맞습니다" 또는 "네"라고 또박또박 답변했다.

그러나 검찰에 이어 변호인의 모두 진술이 진행되자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인인 이순자 여사도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전씨와 나란히 앉았다.

검찰은 '2000년대부터 회고록 출간 준비를 시작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15년경 초고를 만들었다'는 전씨의 서면 진술을 토대로 전씨가 주도적으로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12·12 반란과 5·18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전씨의 대법원 판결문에 '광주에서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것을 지시했다'고 기록된 점, 국가기록원 자료 및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전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썼을 뿐 고의로 허위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5·18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특히 조비오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 전후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 허위사실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5·18 당시 광주에서 기총소사는 없었으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은 헬기 사격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전두환 살인마"라고 소리쳤다.

정 변호사는 이날 형사소송법 319조를 근거로 이 사건의 범죄지 관할을 광주라고 볼 수 없다며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하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부인 이씨도 별도로 재판부에 편지를 전달했다.

전씨 부부는 재판이 끝난 뒤 30분 넘게 청사 내부에서 대기하다가 광주시민들의 거센 비난과 항의를 받으며 승용차를 타고 법원을 떠났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 됐다.

다음 재판은 증거 정리를 위한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되며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areu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