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문화공방 에이콤 이광진 대표

혼자 기획하고 발로 뛰며 '씨 뿌리고 가꿔'

'30년, 120여편, 20만명'...흘러간 세월 속 공연수와 동원한 인원

"늘 힘되어 준 관객들이 있었기에..." 감사

'30년, 120여편, 20만명…'

이 숫자들은 한 공연기획사가 지난 30년 동안 무대에 올린 공연수와 동원한 관객수다. 시각차에 따라 이 숫자들이 주는 무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광진'이라는 한 사람이 척박한 미주 이민사회 문화계에서 묵묵히 일궈낸 궤적이기에 숫자를 떠나 긴 세월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989년 3월 첫발 디뎌

30년 전, 공연문화라는 말조차 생소할 정도로 거칠고 척박했던 남가주 한인사회. 이런 문화 불모지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감성으로 30년 공연기획 외길을 걸어온 문화공방 '에이콤'의 이광진 대표. 그에게 있어 '공연'은 천직이자 외길인생이나 다름없다.

타국이라 정서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 소통이 불편했던 한인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로 된 120여편의 공연을 긴 세월 동안 소개하고, 메마른 이민사회에 공연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키웠기에 그를 '미주 한인 문화계의 대부'라 해도 반박할 이 없을 것이다.

그가 1989년 3월에 미주 한인사회 최초로 문화기획사인 에이콤을 설립했으니 올해 3월로 꼭 30주년을 맞는다. 이 대표는 미주 이민사회에 '공연 문화'의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겠다는 일념으로 30년 동안 우직하게 뚜벅뚜벅 한길을 걸어왔다.

"좋아하는 일이어서 행복"

긴 세월 이런저런 부침에 흔들림 없었겠냐마는, 이 대표는 "배고픈 바닥에 뛰어들어 한 눈 팔지 않고 한우물만을 판다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적 풍요로움은 어느 재벌 부럽지 않다"고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120여편을 무대에 올리는 동안 소위 말하는 '공연 사고'(펑크) 한 번 없었다는 것이 큰 자랑이고 자부심이다"고 멋쩍어했다.

이 대표는 공연도 공연이지만 긴 세월동안 무대를 만들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예술 문화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이야 말로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특히 빈 객석을 채우며 그 길 위를 함께 동행해 준 듬직한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이 대표는 소회한다.

연극, 음악 장르도 다양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가장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은 역시 관객들이다. 관객들이 있었기에 이 길을 걸어올 수가 있었고, 힘에 부칠 때마다 일으켜세우는 큰 힘이 돼주었다. 또 관객들과 함께 늘 제 곁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문화공연을 후원해주었던 벨라스코의 벤자민 박 회장을 비롯한 '문화 사랑' 친구들에게 늘 감사하다."

에이콤은 지난 30년간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120여편을 LA한인사회에 소개했다. 그가 올린 공연을 보러온 관객 수만 20만명 이상이다.

이 대표가 올린 첫 작품은 에이콤 설립 몇개월 전이었던 1988년 11월에 공연한 '우리읍내'(손톤 와일더 작 각색)다. 당시 한인 2세 백광흠씨 구명운동 일환으로 기획됐고, 수익금 7000달러를 구명활동에 기부했다.

이 작품 후 에이콤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공연기획에 뛰어들었다. '봄날은 간다','하늘꽃', 배우 최은희 무대인생 50주년 기념연극 '오 마미' 등 LA의 배우들과 연극인들을 모아 극단을 만들고 직접 기획해 무대에 올린 연극공연만도 현재까지 20여편에 이른다.

또 다수의 MBC마당놀이와 SBS의 악극 '홍도야 울지마라', 국립극단의 '피고지고 피고지고', '어머니', '장수상회' 등 한국의 우수극단의 초청공연을 40여편 무대에 올렸다.

연극, 마당극 뿐만이 아니다. 7080 포크음악을 비롯한 각종 콘서트도 50여회다. 패티 김, 조영남, 김세환, 심수봉, 유익종, 이광조, 변진섭, 박강성, 해바라기, 산울림, 장미여관 등에 이르기까지 50여팀의 초청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5월말 '할배열전' 준비

이외에도 국악공연, 발레공연 등도 10여편에 달한다.

이 대표는 최근 미주 한인사회에 줄을 잇고 있는 카지노 공연에 대한 따끔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이 대표는 "카지노 초청 공연을 통해서라도 LA에 한인들을 위한 공연이 많이 올려지는 것은 긍정적이긴 한데, 그런 공연은 사실 '미끼 공연'으로 정상적으로 기획되는 공연이 아니다"면서 "더불어 한인들 사이 언제부터인가 기획사에서 뿌려지는 공짜표를 바라는 풍토가 만연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대표는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공연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성숙한 공연 문화가 한인사회에도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오는 5월말경 무대에 올려지는 본보 20주년 기념 특별공연 '할배열전' 준비에 한창이다. 2016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베스트 수상작으로 주호성씨가 연출하고 최주봉, 윤문식 등이 출연하는 연극으로 노인들이 은행을 터는 내용의 코미디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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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바우만 돕기 사랑의 돕기 콘서트'

이광진 대표가 지난 30년 동안 올린 공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일까.

바로 1996년 할리우드파크에서 공연한 그룹 '룰라'의 '백혈병 환자 성덕 바우만 돕기 사랑의 콘서트'다.

당시 표절시비로 미국에 와 있던 룰라를 헬기 등을 동원해 화려하게 무대에 세웠는데, 한인사회 최고의 무대였다는 평을 지금까지 듣는다. 결과는 1만5000명이 입장했고 현장에서 300명 이상의 헌혈과 2만달러의 수익금을 아시아골수기증협회(A3M)에 전달했다. 결국 이 공연을 기폭제로 성덕 바우만은 골수 기증자를 찾을 수 있었고, 다른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다. 물론 룰라도 재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