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 끼리 미국서 소송전 '초유의 사태'

[뉴스포커스]

"자동차 배터리 관련 인력 76명·기술 동반유출"
SK "기업의 정당한 영업 활동, 문제 없어" 반박
美 국제무역위, 델라웨어 법원 내년 최종 판결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차세대 핵심 기술 유출 문제를 놓고 한국 대기업 간 분쟁이 미국 법정에서 가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LG화학은 지난달 29일 자동차 배터리에 관한 핵심 기술 등 영업 비밀을 유출당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법원에 제소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 인력을 대거 빼가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까지 훔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측은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라며 즉각 반박하고 나서면서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셀, 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했고,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 측은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ITC와 연방법원의 증거개시 절차 때문"이라며 "증거개시 절차는 정식 변론에 돌입하기 전 소송 당사자가 정보나 자료를 제출·공개하는 법적 의무로 증거 은폐가 어렵고 이를 위반하면 소송 결과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자사의 2차전지 관련 핵심 기술이 SK이노베이션으로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 인력을 빼가면서 관련 기술도 함께 유출해 갔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인력 중에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측에 2017년과 이달 '영업비밀, 기술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증명 공문을 보내는 등 자제요청을 했다"며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이 핵심 인력 채용과정에서 유출된 영업비밀 등을 2차전지 개발과 수주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다 이런 행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LG화학은 올해 초 대법원에서 2017년 당시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바 있다. 재판부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 양사 간 기술 역량의 격차 등을 인정해 '2년 전직 금지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에서 이 내용이 확정됐다.

한편 이번 소송과 관련해서는 ITC가 이달 중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면 내년 상반기 예비판결을 거쳐 하반기 최종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