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 분석…"자치권 훼손되면 금융·관광에 직격탄"
경제사회적 불안감 커지면서 IPO 연기·토지 낙찰 포기 잇따라

(서울·홍콩=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안승섭 특파원 = 범죄 피의자를 중국 본토에 압송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 경제가 거대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홍콩의 자치권을 훼손하는 법 때문에 외국자본 탈출, 신용등급 추락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4일 발간했다.

BI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2014년 발생한 민주화 운동인 '우산 혁명'과 일견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BI는 우산 혁명 때는 관광객들이 감소하는 데 그쳤으나 이번에는 금융까지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경제적 충격이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 GDP에서 관광의 비중은 4.5%에 불과하지만, 금융은 25%까지 차지하는 기간산업이다.

현재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중국 권위주의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을 반체제인사, 인권·민주주의 활동가들을 본토로 압송하는 데 악용할 것으로 보고 대규모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BI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홍콩에서 적립한 금융자산을 빼갈 수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이 심하면 금융회사들의 유동성을 옥죄는 대규모 자본탈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면 홍콩상하이은행(HSBC), 홍콩중국은행(BOCHK) 등 현지 대형은행들의 예금이 줄고 이들 은행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는 최근 대규모 시위 속에 이날 1개월물 홍콩 은행간 금리(HIBOR)가 11년 만의 최고인 2.63%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에 이 같은 우려가 일부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HSBC와 자회사인 항셍, BOCHK는 각각 홍콩에 3조7천억 홍콩달러(약 560조원), 1조9천억 홍콩달러(약 287조원)를 보유하고 있다.

BI는 자본탈출 때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환율을 방어하고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나설 수 있지만, 홍콩의 독립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더 고조되면 그런 분투가 역부족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리스크 때문에 홍콩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태가 불거진다면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금융경색이 더욱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2일 홍콩의 신용등급을 최상급보다 한 단계 낮은 AA+로 유지했다.

그러나 피치는 홍콩이 자치를 훼손하는 쪽으로 중국 본토와 규제나 제도를 맞춰간다면 현재 중국의 A+보다 3단계 높은 홍콩의 신용등급을 재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I는 다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피치와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의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부동산 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BI는 홍콩의 대부업체 골딘파이낸셜이 111억 홍콩달러에 낙찰받은 상업용지를 지난달 포기한 사실을 그 사례로 지목했다.

골딘파이낸셜은 상업용지 포기의 이유에 대해 "최근의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불안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홍콩 정부는 전날로 예정됐던 17억 달러 규모의 옛 공항 부지 매각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매각 연기 이유에 대해 홍콩 정부는 12일 도심 시위로 전날 정부청사가 폐쇄됐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일부에서는 무역전쟁과 최근 홍콩 시위로 인해 입찰자가 적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도심 시위의 후유증으로 14일로 예정됐던 드래곤 보트 경주도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주는 6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을 것으로 기대됐다.

물류·부동산개발업체인 'ESR 케이먼'은 전날 '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들며 홍콩거래소 상장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12억 달러를 조달할 예정이었으며, 이는 올해 아시아 지역 최대의 IPO로 기대를 받았었다.

홍콩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아론 하리레라 홍콩총상회 회장은 "대규모 시위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나타낸다"며 "홍콩 정부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계속 경청하고 대중과 의미 있는 대화에 나설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