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70%·스마트폰용 올레드 90% 점유율…"한국 없으면 글로벌 패닉"
피해 최소화 위한 조기 수습 '호소'…중장기 대책 필요성도 지적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일본 정부가 일부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관련 업계의 긴장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나오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 셈법'에 따라 외교 문제를 빌미로 강경한 조치에 나섰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에서다.

다만 타결점을 찾더라도 한일 양국의 외교 기싸움이 장기화할 경우 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조기 해결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관련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요청했다.

10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 리지스트(PR), 고순도 불산(HF) 등 3개 품목의 수입 차질이 계속될 경우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약 2∼3개월 뒤에는 주요 제품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일본산 포토 레지스터에 사실상 전량 의존하는 삼성전자[005930]의 극자외선(EUV) 반도체 생산라인 등 일부 공장은 더 빨리 멈출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일본 소재업체의 해외 공장을 통한 우회 수입이나 중국, 대만 등 대체 수입원 발굴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일본의 소재 기술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복수의 IT 기업 관계자는 "급하다고 질이 낮은 소재를 쓸 경우 그 부작용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은 글로벌 IT시장에서 차지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비중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자포자기할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는 전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합계 점유율 70%와 50% 이상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이 90%에 육박하고, LG디스플레이[034220]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글로벌 1위 업체다.

만약 삼성, SK, LG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전세계 전자산업은 물론 자동차, 항공, 조선, 화학 등 모든 분야가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웬만한 제품 가운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들어가지 않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산 부품이 없을 경우 신제품 생산은 어렵다"면서 "각국의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비도 마찬가지이고, 일본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의 '고집' 때문에 애플 아이폰과 GM 자동차 생산에 직접적인 차질이 발생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덧붙였다.

외교적 사안을 빌미로 한 일본의 '횡포'가 글로벌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경우 국제사회가 중재 혹은 압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인 셈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도 "일본 참의원 선거가 마무리되고 한일 양국의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는 추측까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문제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보게 될 피해"라며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이날 청와대에서 열리는 30대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집단 지성'이 발휘돼 이번 사태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 방안과 중장기 산업 전략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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