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회적 진화' 기원 고릴라와 공동조상으로 더 올라가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고릴라는 다른 고릴라와 평생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고대 인간사회와 흡사한 사회적 관계 계층을 형성하는 등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인간의 사회 시스템이 다른 영장류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족(hominin)의 '사회적 두뇌(social brain)'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릴라와의 공동 조상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 인류학자 로빈 모리슨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콩고공화국 누아발레-은도키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서부고릴라 관찰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생물학 저널인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야생동물보존협회(WCS)가 관리하는 음벨리 바이 습지 공터에서 관찰한 자료에다 2000년대 초 로코우 지역에서 확보된 관찰 및 유전자 분석 자료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고릴라 사회는 수컷이 자식을 가진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작은 가족 또는 독신 수컷 고릴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이런 고릴라 가족과 독신 고릴라 간의 상호작용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적 알고리즘을 개발해 6년치에 달하는 기존 관찰 자료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고릴라 모임의 빈도와 시간 등을 통해 지금까지 분명치 않았던 '사회적 계층(social layers)'이 드러났다.

직계가족 다음으로는 인간 사회의 숙모, 조부, 사촌 등과 마찬가지로 떨어져 살며 정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먼 친척 그룹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는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군체그룹이 존재한다. 이 그룹은 고대 인간사회의 부족이나 마을과 같은 작은 정착촌 그룹으로 볼 수 있다.

고릴라 가족을 이끄는 나이 많은 수컷은 등에 은백색 털이 나 있어 '실버백(silverback)'으로 불리는데, 서로 의붓형제인 곳에서는 같은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찰된 고릴라 모임 중 80% 이상이 관계가 멀거나 전혀 관련이 없는 실버백 간에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암컷 고릴라가 여러 그룹을 옮겨다니며 수컷 자식이 출생 그룹에서만 성장하지 않게 하는데, 이는 다른 고릴라들과 의붓형제와 비슷한 관계를 맺어 성인이 됐을 때도 유대관계가 이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또 청년 고릴라들은 가족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혼자서 살아갈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다른 수컷 독신 고릴라들과 무리를 지어 한동안 생활하는데, 이런 점도 유대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지적됐다.

연구팀은 이번 관찰 자료만으로는 빈도가 높지 않아 확실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고릴라들이 좋아하는 열매 따기에 즈음해 연례 모임이나 축제 등과 비슷한 "정기 모임"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서부고릴라가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희귀 열매를 따 먹기 위해 하루에 수킬로미터를 걸어 이동하기도 한다"면서 고릴라가 서로 협력한다면 열매 얻기가 더 수월할 것이고, 사회적 관계 계층을 발전시킨 것도 열매 얻기가 주요 목적 중 하나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사람족에게만 있는 특별히 크고 복잡한 사회적 두뇌가 인간사회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고릴라 관찰 결과는 인간의 사회적 복잡성이 훨씬 더 이전에 진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모리슨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연구결과는 멸종위기에 빠진 고릴라가 대단히 똑똑하고 복잡하며, 인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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