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절약 정신 몸에 밴 베이비부머 세대, 나이들어도'쓰고 살자'보다는 '덜 써야'에 익숙

[뉴스포커스]

은퇴 후 18년된 美 가구 80% 은퇴 전 자산 그대로 보유
85세 이상은 되레 자산 늘어…돈 많아도 바닥날까 걱정
벌고, 모으는 것엔 유능, '어떻게 잘 쓸까' 배운적 없어
'자동 저축'을 '자동 지출'로 바꾸고 사는 방법 익혀야

이민 1세 한인들은 절약 정신이 몸에 배였다. 미국 오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리커스토어나 세탁소 등 영세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일했다. 식사 값이 아까워 아침은 우유 한잔으로, 점심은 햄버거로, 그리고 저녁은 맨 밥에 김치 반찬으로 때우며 돈을 모았다. 양말 하나 안사고, 1년 내내 파카점퍼만 걸치고 다니면서 1센트 짜리 동전도 아끼기를 수십년. 60세 넘어 남부럽지 않게 재산도 모으고 은행에도 제법 큰 돈이 쌓였다. 그리고 "은퇴만 해봐라, 좋은 차와 집으로 바꾸고, 세계 곳곳 여행도 하고, 실컫 인생을 즐길테다" 마음 먹는다. 그러나…막상 은퇴하고 나니 달라진게 없다. 은퇴 연금도 받고 일찍 사놓은 부동산 값도 크게 올랐는데 돈 쓰는 건 그대로다. 평생을 다짐하고 살아온 '쓸데없는 데 1불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절약 정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노후를 꿈꾸며 평생 악착같이 벌은 돈을 막상 은퇴 후에도 쓰지 못한다면?

LA타임스는 최근 노후 준비를 위해 열심히 모은 돈을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은퇴 노인들에게 '은퇴 했다면 이제 저축해놓은 돈을 쓰기 시작하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론상으로는 돈을 쓴다는 것이 마냥 신나고 기분좋을 것만 같지만 사실상 수년간 덜 먹고 덜 입으며 저축해 온 돈을 갑자기 펑펑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은퇴후 수입이 크게 줄었는데 나가는 돈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스트레스다. 더욱이 지금같은 100세 시대에 "더 늙어서 돈이 바닥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에 고민이 깊다.

그러나 신문은 재정 전문가들을 인용, 은퇴노인들에게 "이제는 저축한 돈을 잘 써야할 때"라고 조언한다.

산타 클라라 대학의 행동 금융학 교수 메이어 스타트만은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하면 돈을 덜쓸까'라는 생각에 더 익숙하다" 며 "젊은사람들의 대부분은 돈을 쓰는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자금이 축난다는 사실에 돈 쓰기를 꺼려한다" 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일 65세가 되는 1만명에 육박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은 '돈을 어떻게 하면 아끼고 잘 쓸까' 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노인들이 은퇴 후 조금 더 '신나게 살수 있는' 재정을 갖고 있다. 앞으로 생존할 시기를 따져봐도 충분하게 쓸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복지연구소와 블랙록 은퇴협회는 연구조사를 통해 은퇴 노인들의 상당수가 부의 정도에 관계없이 은퇴연금과 모아둔 자산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은퇴한 지 18년이 지난 9천760가구 중 80% 는 그들의 자산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나이가 85세가 되는 은퇴가구에는 되레 자산이 늘어난 경우도 많아 부의 정도와 관계없이 중·저소득층 모두 자산을 잘 유지하고 관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산층은 자산의 77% 를 유지했고 저소득층 역시 80%를 유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베이비 부머 세대들은 많은 양의 현찰을 소유하기도 한다. 이들은 퇴직 연금 제도에서 이익을 창출하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큰 이득을 보기도 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달리 소셜 시큐리티 연금이 고갈되고, 의료비 부담이 훨씬 더 커진, 곧 60대에 들어서는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들과 크게 대조된다.

한 재정상담가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돈을 열심히 벌고 모을 줄은 알지만,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며 "돈이 생기면 보통 저금하는 것만 생각하고 어떻게 쓸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고 덧붙였다.

예를들어 '401K 플랜'이나 'IRA' (개인연금적금) 등의 은퇴 자산을 유지하고 있는 은퇴 노인들은 보통 70세 쯤 되면 연금을 다달이 얼마씩 인출하는게 정상인데 대다수의 은퇴노인들은 이 돈이 빠져 나가는 것을 꺼려한다. 돈이 바닥날까 미리 걱정이다.

재정상담가들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70세가 넘었는데 좀 더 있다가 멋지게 돈을 쓰겠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은퇴 후에 '자동 저축'을 '자동 지출'로 바꾸고 사는 시대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