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상·하원 2/3와 38개 주 찬성 필요, 1992년 이후 헌법 개정안 단 하나도 통과안돼

트럼프'출생 시민권 중단'발언 파장

한인들 "미국 시민권 못딸라" 문의 빗발
'원정 출산' 등 불법 이민 조장 비판 불구
헌법 바꾸기 쉽지않아…행정명령도 암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를 언급하자 많은 한인들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가뜩이나 반이민법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서 태어나더라도 시민권을 주지않는 방안을 심각하게검토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전반적인 이민정책을 흔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족학교 등 관련 이민단체들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진의와 법제화 가능성에 대한 한인들의 문의전화가 꽤 많이 걸려왔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부모의 국적을 기준으로 한 속인주의를 따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속지주의에 따라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10월에도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출생 시민권 제도는 헌법에 근거를 둔 것이라 폐지가 쉽지 않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및 그 사법권에 속하게 된 사람 모두가 미국 시민이며 사는 주의 시민이다"라고 규정한다. 1868년 제정된 이 법은 노예제 폐지(1865년) 이후 자유 신분이 된 흑인 노예의 시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1898년 미 대법원이 중국인 이민자의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도 부모의 시민권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수정헌법 14조는 '미국 출생자는 미 시민권을 지닌다'는 의미로 해석돼왔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출생 시민권 제도가 원정출산 등 불법 이민을 불러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불법 이민자인 부모가 본인의 시민권 취득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자녀를 일부러 미국에서 낳는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4년 27만5000명의 미허가 이민부모의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18세 이하의 미국 출생 미성년자 470만명이 적어도 부모 1명이 미등록 이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정헌법 14조를 바꾸기 위해선 개헌을 거쳐야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헌법 개정안이 상정되려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거나, 주 의회의 3분의 2(50곳 중 34곳) 이상이 헌법 제정회의 소집을 요구해야한다. 그뒤 상정된 개정안이 헌법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모든 주의 4분의 3(50개주 중 38개주) 이상이 비준해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미국은 1992년 이후 헌법 개정안을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강행하더라도 연방법원에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이 제소될 가능성이 크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출생 시민권 폐지'발언을 한 데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15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의 60%가 출생 시민권 제도 중단에 반대하고, 37%는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지지하는 3분의 1의 관심을 이민자 문제로 결집시키려는 계산이다.

이에대해 민족 학교의 한 관계자는 "기사가 나온뒤 관련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출생 시민권 문제는 헌법에 명시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를 중단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실현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라며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꼭 실행 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수많은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