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관계 훼손한 日과 지소미아 유지할 명분 없다' 원칙 재확인
"공은 일본에 넘어가 있다"…대화 가능성 열어둬
美측에 지소미아 종료 당위성 앞세워 이견 최소화 주력할 듯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일본이 28일 통관 절차에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하자 청와대는 일본을 향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무엇보다 경색된 한일 관계는 일본의 책임임을 거듭 강조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이어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일관계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일본의 이번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일본은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두고 우리가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초 안보문제와 수출규제 조치를 연계한 장본인은 바로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이 역사를 바꿔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의 전날 막말과 관련, "역사를 바꿔쓰고 있는 것은 일본"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더했다.

일본이 이날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는 점은 예고돼 있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강한 어조로 일본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일본이 훼손된 신뢰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한국이 국가 간 신뢰를 훼손했다"며 한국에 책임을 전가했고, 고노 외무상은 지난 22일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불러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항의하며 "안보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이와 같은 '적반하장'에 선을 긋지 않는다면 자칫 일본의 안하무인 태도에 끌려갈 수도 있는 만큼 청와대로서는 한일 갈등을 유발한 책임의 소재를 확실히 밝히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 차장이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양국 간 기본적 신뢰관계가 훼손된 상황에서 고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직후 청와대 관계자가 "일본이 부당한 보복을 철회하면 여러 조치는 재검토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청와대는 여전히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김 차장은 "공은 일본 측에 넘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해 관계 회복에 필요한 제1의 조건은 일본의 반성이라는 점을 못박았다.

청와대가 이처럼 일본의 태도를 강한 어조로 비판한 배경에는 지소미아 종료 후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 동맹 균열에 대한 우려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일 공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미국이 '이해'했다고 한 것을 두고 미측에서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해했다'고 한 것은 미측이 우리 결정에 동의했다는 것이 아니라 '입장을 알고 있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를 반영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관계자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과정에서 양국 NSC 간에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소통했다는 점을 역설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사전에 인지한 것과는 별개로 부정적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미 행정부 내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미가 '엇박자'를 보였다거나 갈등을 겪었다는 관측에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부인하며 다소 격앙된 어조로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실망'을 표한 미국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일본에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역설하면서 한미 간 견해차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