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준수→헌법에 따라'·'평화' 언급 1→3회
아베 축사 '일본 긍지'…29년 전 가이후는 '인류복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9년 만에 열린 즉위 행사에서 나타난 일왕의 발언 변화가 일본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22일 즉위를 선언하는 행사인 '소쿠이레이세이덴노기'(即位禮正殿の儀)에서 행한 발언의 주요 표현이 부친 아키히토(明仁) 상왕의 29년 전 언급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약간 달라진 부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헌법에 관한 표현이 미묘하게 변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왕실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인 일본 궁내청 자료를 보면 아키히토 상왕은 즉위 2년 차인 1990년 11월 12일 열린 소쿠이레이세이덴노기에서 "항상 국민의 행복을 바라면서 일본국 헌법을 준수하고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며…"라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22일 의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헌법에 관한 언급에서는 '일본국 헌법을 준수하고'가 '헌법에 따라'로 바뀐 것이다.

맥락을 고려하면 의미는 비슷하지만, 단어 선택이 달라진 것은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후루카와 다카히사(古川隆久) 니혼(日本)대 교수는 아키히토 상왕은 "헌법의 준수를 강하게 내세워 일부로부터 호헌(護憲)파로 여겨지게 됐다"며 나루히토 일왕은 "표현을 부드럽게 해서 중립성을 내보여 정치적 논의에 말려드는 것을 피한 것이 아니겠냐"고 요미우리(讀賣)신문에 의견을 밝혔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근대사에 밝은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씨는 나루히토 일왕이 '일본국 헌법' 대신 '헌법'이라는 용어를 택한 점에도 주목하며 "정치에서 테마가 되는 헌법 개정 논의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헌법에 관한 발언 변화에서 "더 알기 쉬운 말로 국민에게 전하려고 했다는 의사가 엿보인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22일 발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을 '평화'를 3차례나 말한 것이다.

그는 아키히토가 30년 이상에 걸친 재위 중에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했다고 부친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평화'를 우선 언급했다.

이어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자신의 각오를 밝히는 대목에서도 '평화'라는 단어를 썼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바람을 밝히면서 '평화'를 다시 거론했다.

아키히토 상왕은 즉위 2년 차인 1990년 11월 12일 열린 소쿠이레이세이덴노기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한번 사용했다.

그는 "나라가 한층 발전을 이뤄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평화를 세 차례나 언급한 것은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지만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 '세계의 평화'라고 언급한 것은 일왕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유학(영국 옥스퍼드대)을 하는 등 국제 사회를 적극적으로 경험한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며 총리가 하는 발언인 요고토(壽詞)에도 변화가 있었다.

1990년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당시 총리는 "문화의 향기가 풍부한 일본", "세계의 평화, 인류복지의 증진"을 언급했는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2일 "긍지가 있는 일본의 빛나는 미래"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아베 총리는 앞서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표방하거나 "전후 70년 평화 국가의 행보에 조용한 긍지를 느낀다"(2016년 12월 진주만 방문 시)라고 말하는 등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는 것과는 거리를 뒀는데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