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송년모임 등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속 "왜 나만 혼자 공허하고 쓸쓸한가" 침울

[뉴스포커스]

한국인의 '성취 문화'서 오는 박탈·자책감
혼자 사는 노인, 유학생, 연인 없는 싱글 등

과식·과음의 부작용으로 병원 찾는 경우도
심하면 우울증…스스로 소외 시키지 말아야

#직장인 김모씨(31·LA)는 요즘 출근길에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아침마다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에 벌써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연말이라 다들 들뜬 분위긴데 나만 우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 야심차게 다짐했던 다이어트와 금연 계획은 이미 실패했고 직장에서 기대했던 승진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김씨는 "딱히 이룬것도 없이 벌써 한해가 다 갔다는 생각에 허탈하고 자책감이 든다"며 "연말이라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아무리 떠들썩하게 놀고 들어온들 혼자 있을때의 공허함과 쓸쓸함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화려하고 들뜬 연말 분위기 속에 유독 나만 우울하고 불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맘 때가 되면 한 해 동안 일궈낸 성과가 없다는 자책감과 앞으로 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지면서 심리적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우울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연말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매년 12월이 되면 연말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10대~50대 남녀 21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5%가 현재 '연말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연초에 계획한 일을 실천하지 못한 자책감'이 25.2%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새해에 무언가를 잘해야겠다는 중압감'(18.9%),'많은 사람과 있어도 괜히 외롭고 쓸쓸함'(17.7%),'연인이 없어 우울함'(12%),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자리에 대한 스트레스'(10.9%), '약속이 없어 우울함'(8.7%),'잦은 모임과 업무로 금방 피곤함'(6.8%) 등이 있었다. 응답자들이 연말증후군 극복을 위해 가장 많이 선택한 방법 1위(35%)는 '같은 처지의 친구와 술을 마시겠다'로 집계됐다.

유학생 박모씨(24·LA)는 연말이 되니 한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SNS엔 얼마전 추수감사절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가족끼리 즐거운 한때를 보낸 친구들 사진 투성이다. 박씨는 "추수감사절에 만날 친구도 없고 여는 식당도 없어서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었다"며 "연말에 각종 모임과 회식이 많은 분위긴데 만날 사람이 없어서 우울하다"고 하소연 했다.

성소영 심리학 박사는 한해동안 이루어낸 것이 없어 자책을 하게 되는 현상이 '꼭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고 여기는 한국인의 '성취문화'에서 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모임이 잦은 연말에 혼자 있는 유학생이나 독거노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고 우울함과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는 우울증상에 속하며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성소영 박사는 "이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조언하거나 사람들과의 교류를 권유해선 안된다"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말증후군의 여파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과식과 과음의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도 급증한다.

이영직 내과의 이영직 원장은 "추수감사절 및 크리스마스 등의 할러데이 시즌 이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며 "과식을 하고 과도한 양의 나트륨을 섭취하게 될 경우 심부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잦은 회식으로 인해 신체 리듬이 깨지면서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말 분위기가 주춤 하는 새해가 되면 과음, 과식, 운동부족, 소화기능 저하, 속쓰림, 위장질환 등을 앓거나 감정 변화로 인해 무기력증 및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한다. 이원장은 "연말증후군을 피하기 위해 평소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과식과 과음을 피하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