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타 여성스럽게 묘사한 그림에 유족·지지자 "게이로 그려놨다" 분노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혁명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1879-1919)를 묘사한 그림 하나가 멕시코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문제의 그림은 멕시코 화가 파비안 차이레스가 그린 '혁명'이라는 작품으로, 멕시코시티 예술궁전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파타 100주기 특별전에 내걸렸다.

그림 속에서 사파타는 벌거벗은 채 분홍색 모자와 하이힐을 신고 말 위에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다.

사파타는 농민들을 이끌고 독재정권에 대항한 멕시코 혁명 지도자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사파타 사망 100년을 맞는 올해를 사파타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림이 공개되자 사파타의 유족은 곧바로 반발했다.

사파타의 손자 호르헤 사파타 곤살레스는 지난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무명 화가가 명성을 얻기 위해 사파타를 게이로 묘사했다"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술관 측에 당장 그림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할 뜻을 밝혔다.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성난 사파타 지지자 200여 명은 10일 미술관에 쳐들어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문제의 그림을 당장 불태우라고 요구했다고 멕시코 언론들은 전했다.

시위에 참여한 안토니오 메드라노는 AP통신에 "이건 표현이 자유가 아니다. 외설이고 모욕"이라며 "우리 역사를 이렇게 표현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는 그림이 철거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 같은 과도한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전시 큐레이터인 루이스 바르가스 산티아고는 일간 엘우니베르살에 "왜 이 작품만 유독 논란이 되는가"라며 이것이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멕시코의 마초이즘, 그리고 동성애 혐오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1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파타 그림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예술가들은 전적으로 자유가 있어야 하며 검열받아선 안 된다"며 자신은 그림을 보고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다만 사파타 유족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도 않으면서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양측의 원만한 화해를 돕겠다고 덧붙였다.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