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KT 사장 "2011년 일식집서 취업 청탁"…법인카드는 딸 졸업 전인 2009년 결제돼
재판부 "김성태 딸 여러 특혜 받아 KT 채용 인정되나 뇌물수수죄 증명 안돼"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김성태 의원 딸이 여러 특혜를 받아 KT의 정규직으로 채용된 사실은 인정된다.(중략) 피고인 김성태의 뇌물수수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딸의 KT 정규직 부정채용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 대해 재판부가 17일 무죄를 선고하면서 밝힌 판결 내용이다.

재판부는 김 의원이 KT 측에 딸의 정규직 채용을 청탁했고, 이후 딸에게 이례적인 특혜가 돌아간 점은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딸 취업이 김 의원에 대한 대가성을 띤 뇌물이었다는 검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핵심 증거로 내세운 서유열 전 KT 사장의 증언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 '2009년 카드결제 기록'에 핵심 증인 신빙성 무너져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이석채 전 KT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무마해주고, 그 대가로 '딸의 KT 정규직 채용' 형태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 혐의가 성립하려면 '뇌물 공여자'인 이 전 회장이 인사 담당자들에게 김 의원 딸 정규직 채용을 지시한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그동안 검찰은 이 전 회장 최측근이었던 서유열 전 KT 사장의 증언을 핵심 증거로 내세웠다.

서 전 사장은 "2011년 서울 여의도 일식집에서 김 의원이 이 전 회장에게 딸의 취업을 청탁했다", "이 전 회장이 김 의원의 딸 정규직 채용을 지시했다" 등의 증언을 내놓으며 검찰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증언의 허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특히 김 의원 측 변호인은 법원에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을 신청해 서 전 사장의 수년치 법인카드 결제 내역을 받아냈다.

이 결제 내역에는 문제의 여의도 일식집에서 서 전 사장 명의의 KT 법인카드가 2011년이 아닌 2009년에 결제된 기록이 포함됐다. 이 기록은 일식집 만찬이 김 의원 딸의 대학 졸업(2011년) 전인 2009년에 있었으므로 김 의원이 딸 관련 청탁을 할 수도, 이유도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변호인들은 주장했다.

서 전 사장은 "2009년에는 큰 수술을 받은 직후여서 외부 행사 참석이 불가능했고, 기록은 다른 사람이 내 카드를 대신 결제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일식집 만찬에 관한 서유열의 진술은 믿을 수 없게 됐다"며 "이 전 회장이 김 의원의 딸을 알게 된 경위나 김 의원이 이 전 회장과 나눈 대화, 이 전 회장의 채용 지시 등 서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도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 '딸 채용 과정 특혜'는 인정…체면 구긴 검찰

재판부는 "김 의원의 딸은 다른 지원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여러 혜택을 받아 채용됐고, 스스로도 공채 절차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부정채용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아울러 정규직 채용 전에는 김 의원이 서 전 사장에게 딸의 이력서를 건네 채용을 청탁했고, 이에 따라 김 의원의 딸이 KT에 파견계약직으로 채용된 사실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 의원 딸의 정규직 전환이 이 전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서 전 사장의 증언을 믿을 수 없는 만큼 검찰이 적용한 뇌물죄로는 이 전 회장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뇌물 제공 혐의자의 죄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수수자로 지목된 김 의원도 무죄라는 논리다.

이날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작년 10월 김 의원의 딸 등 11명을 부정 채용한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KT 임원들에게는 모두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김 의원에게 뇌물죄 적용이 가능할지를 두고 상당한 고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작년 7월 사건을 재판에 넘기면서 법대 교수, 부장검사 이상급 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수사자문단'을 통해 기소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핵심 증인으로 내세운 인물의 진술 신빙성이 깨지고, 다른 증거로도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아 김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를 벗게 됐고, 7개월여간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일단 체면을 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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