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보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28일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 ‘화투’ 화가로 살아온 10년여의 시간에 결백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28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조영남 ‘그림대작 사건’ 공개 변론에서 검찰과 조영남 측이 선정한 전문가들이 관련 사건에 대해 좁혀지지 않는 의견을 쏟아내며 격론을 벌였다.

앞서 지난 2016년5월 대작화가 송모씨가 “조영남의 그림을 대신 그려왔다”라고 폭로한 뒤 검찰은 조영남이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불구속기소 했다.

3년여에 걸친 1심과 2심 재판에서 조영남은 유죄(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와 무죄를 각각 선고 받았다.

이날 공개변론에 검찰 측 전문가로 참석한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조영남 측이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주장한 조수 사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화가가 조수를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대형 작품을 할 때는 조수를 쓸 수 있고 조수도 원작자가 같은 공간에서 작업과 지시를 해야 하는 것이 관례다. 가수가 본업인 사람이 마치 미술계 대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수는 밑칠을 도와줄 수 있으나 원작자의 역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100호 이하의 작품을 조수를 쓴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사기 행각이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작품에 덧댄다면 오히려 작품성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남의 그림에 자기 그림을 그렸다고 쇼를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영남 측으로 나선 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작가들이 조수의 도움을 받는 관행이 있고 조수를 쓰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관행이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 조수를 쓰고 회화 작품 역시 조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조영남은 자신의 철학대로 그림을 그렸고 작업량이 많다면 조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생각이 들어갔기 때문에 본인의 작품이고 조영남은 팝 아트 계열의 미술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주위의 물품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조영남은 최후 변론에 나섰다.

그는 “5년 동안 이번 일로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하다. 평생 가수 생활을 했지만 내가 다닌 용문고등학교에서 미술부장을 역임했을 만큼 미술을 좋아했고 현대미술을 독학으로 배워서 광주비엔날레, 예술의 전당 등에서 수차례 전시 경력을 갖게 됐다.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를 갖고 세계적인 미술 화가가 된 것에 착안해 나 역시 화투를 갖고 작품을 만들게 됐다”라며 화가로서의 지난 여정을 설명했다.

이어 “내 화투 그림은 그림을 그린 방식보다 그림에 딸린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내 그림은 ‘극동에서 온 꽃’이나 ‘항상 영광’, ‘겸손은 힘들다’, ‘호밀밭의 파수꾼’ 등 개념 미술에 가깝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은 사진 기술 이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조영남은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더 많은 겸양을 실천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달라.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보다. 내 결백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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