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철회 미온적…강제징용 해결 전까진 유지할 듯

강제징용 돌파구 당장 쉽지 않아…정부는 대화와 압박 병행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에 정부가 다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재개로 맞서면서 한일관계가 격화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일본과 계속 대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출규제의 발단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해법이 요원한 상황에서 수출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승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금의 상황이 당초 WTO 분쟁해결절차 정지의 요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며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고자 지난해 11월 22일 대(對) 일본 압박 카드였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유예하고 WTO 제소 절차도 중단했다.

이후 한국은 일본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던 제도적 미비점을 모두 정비하고 일본에 지난달 말까지 수출규제 해결방안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끝내 전향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이날 한국 정부의 WTO 제소 재개 발표에 유감을 표하고 "수출관리 수정은 수출관리제도의 정비나 그 운용 상태에 기반을 두고 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제도 개선을 했지만, 수출관리가 잘 시행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그간의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만큼 강제징용 문제에서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철회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압류한 일본 기업의 자산을 연내 현금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보험으로 수출규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우리는 강제징용과 수출규제를 분리해서 접근하려고 하는데 일본은 분리가 안 된다는 것"이라며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대한 확신 없이는 수출규제를 해제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입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양국이 강제징용 해법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논란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피해자들과 충분한 대화 없이 섣불리 안을 제시하기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과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수출규제를 상당 부분 무력화한 만큼 유리한 국면이 형성되기 전에 섣불리 일본과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미숙 등의 이유로 지지율이 추락한 상황에서 다수 일본 국민이 찬성했던 수출규제 철회를 꺼릴 수 있다.

정부는 일본과 대화는 계속하면서 부당한 수출규제 철회를 계속 요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 있는 압박 수단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WTO 제소는 최종심까지 길게는 2∼3년이 걸릴 수 있고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의 강한 반대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다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WTO 제소 재개는 그동안의 국장급 협의를 통해 양국 간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로 신뢰를 쌓아나가야 하고 고위급 대화 채널이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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