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 받으려면 소유권 소재·남북합의 위반 여부 등 쟁점

송사 관련 합의 없고 강제집행도 제약…재판통한 피해보전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김예림 인턴기자 = 북한이 지난 16일 폭파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해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사무소 폭발사건도 국제법에 따라 반드시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무소속 윤상현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의 국유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정부 재산권을 침해한 불법 행위"라며 "즉시 손해 배상 및 원상회복을 청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수백억원대 세금이 투입된 건물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괴한 만큼 정부가 나서서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감안할 때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첫번째 쟁점은 사무소 소유권 소재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배상을 받기 위해 우선 살펴봐야할 쟁점은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사무소)가 법적으로 한국 정부 소유인지다.

사무소는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2005년 개소)로 사용되던 개성공단내 4층 건물을 증축해 2018년 9월 개소했다. 북한 영역에 있지만 건축 비용은 남측이 댔고, 운용은 남북이 공동으로 해왔다.

18일 사안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 건물은 일단 우리 정부의 국유재산으로 등록돼 있으나 북한 내부적으로 건물로서의 '법적 지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단 국유재산으로 등재한 만큼 우리 정부로서는 건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권 소재를 남측으로 명시한 남북간 서면 합의는 없다.

사무소 관련 남북 당국간 합의로는 2018년 9월14일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북남고위급회담 북측단장'이 각각 서명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있지만 사무소 건물의 소유권과 관련한 내용은 적시돼 있지 않다.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을 때 남북한이 연락사무소에 대해 각자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반도 평화를 꿈꾸는 화해평화연구소' 소장인 전수미 변호사는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원칙적으로 건물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입장에선 남한에 토지 사용권만 줬고 토지 자체는 자신들 소유이기 때문에 건물 처분은 남한의 승락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간 법제 전문가인 이천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북한 지역에 건물을 짓고 투자를 하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부당한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면 분쟁 해결 수단을 확보하고, 소유관계를 명확히 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합의 위반' 법적 추궁 가능할까?

손해배상 관련 또 하나의 쟁점은 북한의 합의 위반 여부다.

북한의 파괴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합의로는 지난 2000년 12월 체결한 '남북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가 거론된다.

합의서 제2조는 "남과 북은 자기 지역 안에서 법령에 따라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4조는 "남과 북은 무력충돌 등 비정상적인 사태로 상대방 투자자의 재산이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 그 손실에 대하여 원상회복 또는 보상함에 있어서 자기측 투자자나 다른 나라 투자자에 대한 것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한다"는 규정도 담고 있다.

그러나 남북 당국간 대화를 위한 인프라인 연락사무소를 '투자 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합의 7조는 "분쟁이 협의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투자자는 남과 북의 합의에 의하여 구성되는 남북상사중재위원회에 제기하여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상사중재위 구성 등과 관련한 하위 규범이 없고, 중재위원회도 구성돼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정부 입장에서 합의 위반을 지적하며 원상회복 또는 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북측은 남북투자보장합의서를 적용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소송 제기한다면 남·북·국제법정 중 어디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남·북한 법정과 국제법정 중 어느 곳에서 할지가 또 하나의 논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방법 다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다.

우선 파괴 행위가 북한에서 이뤄졌고, 파괴 주체는 북한 정부이며, 파괴된 건물도 북한에 있는 만큼 북한 법원에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사법절차와 관련한 남북간 공조 방안을 담은 협약이 없기 때문에 소장 송달 등 절차를 진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우리 법원에 청구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배상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집행할 길이 있는지 미지수다.

참고할 외국 사례는 있다. 북한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송환된 뒤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씨 유족이 자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북한 정부에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북한이 배상명령에 응하지 않자 웜비어 유족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가 압류한 북한 선박의 소유권을 자국 법원에 청구했고,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이 남북연락사무소 관련 배상 판결을 하더라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강제로 집행할 북한 측 자산이 남한에 없다는 것이 한계로 거론된다.

국제 법정에 가져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 역시 제소와 판결 승복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일간의 각종 현안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국제법을 전공한 신희석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JWG)' 연구원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이 있지만 국제법상 북한의 불법행위로 배상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다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당사국들이 사전 또는 사후에 분쟁 사안에 대해 ICJ의 관할권을 인정해야 회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전수미 변호사는 "남북관계에 국제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며 "우리 정부도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로 인정해왔고, 북한도 외국인투자법을 남한 사람에게 적용하지 않는데서 보듯 남한을 외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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