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자문단 소집 절차 중단해달라"…공개 건의

대검 "기본 저버리는 주장…지휘부 설득해라" 정면충돌 양상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박재현 기자 =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수사지휘와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놓고 검찰 수사팀과 지휘부가 30일 정면 충돌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전문자문단 소집 절차를 중단하고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해 독립적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대검찰청은 "기본마저 저버리는 주장"이라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거부했다. 수사팀이 상부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내비치면서 양측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 수사팀 "자문단원 선정 논란 등 비정상·혼란스러운 상황"

서울중앙지검은 30일 오후 3시30분께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검찰청에 전문수사자문단 관련 절차 중단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관련 사실관계와 실체 진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 자문단을 소집할 경우 시기와 수사보안 등 측면에서 적절치 않은 점, 자문단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동시 개최, 자문단원 선정과 관련된 논란 등 비정상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된 점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고위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의 특수성과 '국민적 우려'를 감안해 사건을 맡은 형사1부(정진웅 부장검사) 수사팀에 특임검사에 준하는 직무 독립성을 부여해달라고 요구했다.

특임검사는 상급자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결과만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 2010년 '그랜저 검사' 사건과 2016년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뇌물 의혹' 사건 등 현직 검사의 비위가 불거졌을 때 특임검사가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3시께 대검에 공문을 보내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곧바로 언론에 내용을 공개했다.

수사팀이 검찰총장의 고유 권한인 전문자문단 소집 결정에 반대 의사를 공식화하고 대검 수뇌부의 지휘를 사실상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 대검 "영장 범죄사실 보고 안해…보완수사 지휘도 불응"

대검은 2시간여 지난 오후 5시45분께 기자들에게 입장을 배포하며 서울중앙지검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그러면서 "법리상 범죄 성립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자문단에 참여해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대검은 수사 독립성 보장 요구에 대해 "수사는 인권 침해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상급기관의 지휘와 재가를 거쳐 진행되는 것이라는 기본마저 저버리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수사팀이 이모(35) 전 채널A 기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보고해놓고 "사실관계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영장의 범죄사실은 전부 보고하지 않는 모순적 태도와 지시 불이행을 질타했다.

대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했다면 최소한 그 단계에서는 법리상 범죄 성립과 혐의 입증에 대해서는 지휘부서인 대검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 범죄 구조의 독특한 특수성 때문에 여러 차례 보완 지휘를 했고, 풀버전 영장 범죄사실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었으나 수사팀은 지휘에 불응했다"고 지적했다.

대검은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 대검에 보고된 단계는 어느 시점보다 자문단의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한 적절한 시점일 뿐 아니라 인권 수사 원칙에 비추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검에 수 차례 이의 제기…자문단 소집 절차 거부

수사팀은 이달 들어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을 이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 공범으로 입건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여왔다. 의혹을 처음 보도한 MBC 압수수색 여부 등을 놓고 수사 초반부터 지속된 양측의 갈등은 이즈음부터 고조됐다.

윤 총장은 최측근인 한 검사장이 수사대상에 오른 점을 감안해 수사지휘를 대검찰청 부장회의에 넘겼다. 그러다가 지난 19일 사건을 전문자문단에 회부해 수사팀 외부 법률전문가들의 판단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사팀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문자문단 소집이 적절하지 않다", "위원 구성 절차도 명확하지 않다"며 두 차례 이의제기를 하고 자문단원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대검 요청도 거부했다. 그러나 대검은 전날 일부 과장(부장검사)과 연구관들 주도로 전문자문단 구성 절차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가 전날 사건을 대검 수사심의위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두 개의 외부 자문기구가 같은 사건을 판단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 "정당한 이의제기" vs "사실상 항명"

이날 서울중앙지검의 공개 건의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정당한 이의제기'라는 주장과 '사실상 항명'이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검찰청법은 검사에게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를 의무와 이의제기 권한을 동시에 규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대검 지휘부와 수사팀 사이에 의견이 충돌하는 상태인 데다 대검이 수사를 뭉개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수사 대상이 현직 검찰 실세인데 외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청장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검사에게 이의제기권이 있지만 명령거부권이 있는 건 아니다. 한 번 이의를 제기해서 거부당하면 지휘권자 의견을 따라야 한다"며 "수사팀이 항명을 하고 있고 감찰 대상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측근 감싸기'를 의심하는 여권과 법무부, '검언유착' 수사팀의 파상공세가 계속될 경우 윤 총장이 특임검사 등 다른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특별검사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면 칼자루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윤 총장이 차라리 특임검사 수준에서 막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변호사는 "총장이 지휘를 못할 만한 이해상충 관계가 충분히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