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예대제 끝난 뒤 참배…우파 지도자 위상 공고화 포석인 듯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도 참배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김호준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퇴임한 뒤 우익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19일 오전 9시께 야스쿠니신사의 가을 큰 제사인 추계예대제에 맞춰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참배 후 기자들에게 "영령에게 존숭(尊崇·높이 받들어 숭배한다는 뜻)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19일 야스쿠니신사를 찾은 바 있어 퇴임하고 한 달 만에 두 번째 참배를 기록하게 됐다.

그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26일 현직 총리 신분으로 한 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재임 중에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봄·가을 큰 제사와 8.15 패전일(종전기념일)에 공물만 봉납했다.

올해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하루 단축돼 18일까지 열리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아베 전 총리는 사실상 예대제 기간을 피해 참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한 달 새 두 차례나 달려가는 등 야스쿠니신사에 집착하는 것은 집권 자민당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우익 세력의 뜻을 배려하면서 우파 진영 정치지도자로 자신의 위상을 다져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또 현직 총리로 참배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던 만큼 앞으로 극우 행보를 한층 공공연히 펼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아베가 해온 것을 그대로 답습해 올해 추계예대제 첫날인 지난 17일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인 '마사카키'(木+神)를 '내각 총리대신' 명의의 공물로 바쳤다.

스가 총리 외에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후생노동상과 이노우에 신지(井上信治) 2025오사카 엑스포 담당상이 이번 야스쿠니신사 추계예대제에 맞춰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다무라 후생상과 이노우에 엑스포 담당상은 모두 지난 9월 16일 출범한 스가 내각에 새로 합류했다.

국회의원 중에는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이 마사카키를 바쳤다.

그러나 스가 총리를 제외한 20명의 현직 각료 중에 전날까지 참배한 사람은 없었다.

유력 정치인으로는 지난달 스가 내각 출범 때 영토문제담당상(장관)에서 물러난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자민당 참의원 의원이 참배했다.

초당파 의원 연맹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인 자민당 소속 오쓰지 히데히사(尾십<于 대신 十이 들어간 迂>秀久) 전 참의원 부회장도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다만, 이 모임은 올해 춘계 예대제와 8·15 종전일(패전일)에 이어 이번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집단 참배는 하지 않았다.

오쓰지 회장은 참배 후 기자들에게 "함께 참배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구단(九段)에 세워진 야스쿠니 신사는 1867년의 메이지(明治) 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여러 침략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종교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3천 위는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른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 진영에는 '성소'(聖所)로 통하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전쟁 신사'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야스쿠니에는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군무원)으로 강제징용됐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2만1천181위와 대만인 2만7천864위도 본인이나 유족의 뜻과 무관하게 봉안돼 됐다.

국 정부는 지난 17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도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 발언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대외 침략 전쟁의 정신적 도구이자 상징으로 군국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스가 총리의 공물 봉납을 비판했다.

자오 대변인은 "우리는 일본이 침략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겠다는 약속을 성실하게 지킬 것을 촉구한다"면서 "실질적인 행동으로 아시아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길 바란다"고 밝혔다.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