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漁夫)'-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바닷가에 매어두었지만 지금도 고깃배는 바닷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흔들린다. 바닷물은 이렇게 고깃배를 잠시도 편안하게 놓아두지를 않는다. 그러니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 바닷가에 매어 있는 것이다. 바로 '화사한 날을 기다리'면서.
마치 코로나19에 흔들리는 우리네 삶과 같다.
전대미문의 지독한 바이러스에 우리는 1년이란 세월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일터를 잃어버렸고,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을 갖는 것이 범죄인 시대가 됐다. '마스크' 없이는 한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하는 생경한 세상이 돼버렸다.
감염 불안과 공포에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가고 피폐해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지만 희망까지 꺾을 순 없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 사노라면 / 많은 기쁨이 있다'
망망대해에서 풍랑을 만난 헤밍웨이의 노인이 중얼거리듯 다시한번 노를 굳게 잡는다.
돌이켜보면 태어난 것도, 이제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다. 그 수많은 출렁거림 속에도 부대끼며 이겨낸 인생, 그것은 기적이리라.
그렇다. 살아온 것이 기적이라면 살아갈 날도 기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사노라면 기쁨도 온전히 내 것이다.
길고 험란했던 '코로나 파도'는 이제 끝물이다. '백신 바다'의 시작이다.
신축년 새해 아침. 하늘을 보라. 이제 또 기적이다.

<2021년 1월 1일 편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