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 엄마’에서 세계인의 ‘K할머니’로 올라섰다. 배우 윤여정이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전 세계인에 인정받은 자리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듯한 한 외신 기자의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노련함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윤여정은 26일 오스카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극 중 딸 한예리(모니타 역)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열연한 윤여정은 자신의 55년 연기 인생을 세계인에게 인정받았다.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위트 넘치는 수상 소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만나서 영광이다. 우리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냐”면서 “많은 유럽 분이 나를 ‘여여’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 부르는 데 모두를 용서하겠다. 내가 사실 아시아권에 살면서 서양TV를 많이 봤다. 그래서 TV에서만 보던 걸 내가 이 자리에 직접 오니 믿을 수가 없다. 감사하다. 정말 아카데미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원더풀 미나리 가족들께도 감사하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또한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와 내가 어떻게 경쟁을 하겠냐. 오늘 이 자리에 그냥 운이 좋아서 있는 것 같다. 이 자리에 있는 두 아들에게도 감사하다. 두 아들이 내게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저 아이들의 잔소리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았다. 김기영 감독은 내 첫 감독님이었다. 첫 영화를 나와 함께 만들었는데 살아계셨다면 정말 기뻐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수상 뒤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문제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날 한 외신 기자는 윤여정에게 ‘시상을 한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냐’고 물었다. 동양인을 동물과 비유한 듯한 기분 나쁜 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윤여정은 “나는 그의 냄새를 맡지 않았다. 난 개가 아니다”라며 미소지었다. 인종차별적인 성격이 담긴 질문에 유쾌하게 답변한 거다. 윤여정은 그러면서 “그는 내게도 무비 스타이기 때문에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이 ‘블랙 아웃’ 됐다. ‘내가 어딨지?’ ‘잘 말하고 있나’ 하고 내 친구에게 계속 물어보았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배우가 오스카에서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잔칫날 어느 한 기자의 무례한 질문으로 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여정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질문하지 말아달라”며 자연스럽게 무례한 질문을 넘겼다. 그는 오랜 연기 생활과 국내에서 겪고 쌓은 언론 대응 경험으로 대처하며 자신의 잔칫날을 흠집 없이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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