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미나리'여우조연상 수상 쾌거, 영어로 조크하며 빛나는 수상 소감

[뉴스포커스]

"운이 좋았다…정이삭 감독 없이는 수상 못했다"
자신이 출연한 첫 영화의 감독 김기영에 감사도
미나리, 작품·감독상 등 나머지 5개부문선 고배

윤여정(74)이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다.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윤여정은 25일 유니언 스테이션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 독립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함께 후보에 오른 '보랏서브시퀀트무비필름'의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결과다.

▶브래드 피트가 수상자 호명

수상자 호명은 '미나리'의 제작사인 A24를 설립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직접 나섰다.

백발을 틀어올린 모습에 이집트계 디자이너 마마르할림의 짙은 네이비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윤여정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영어로 쏟아냈다. 그는 무대 오른쪽에 서 있던 시상자 브래드 피트를 향해선 "드디어 만났군요. 우리가 털사에서 영화 찍을 동안 어디 계셨나요?”하는 우스개로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내 이름은 '여정 윤'이다. '여영''유정'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모두 용서하겠다"며 다시한번 좌중을 웃겼다. 그는 "TV프로그램 보듯 아카데미 중계로 봤는데, 이자리에 왔다니 믿을 수 없다. 투표해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미나리 원더풀"을 외치며 "패밀리에 감사하다"고 했다. "정이삭 감독 없이는 이 자리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캡틴이자 감독이었다. 무한한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경쟁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수많은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봤던 글렌 클로즈를 이길 수 있겠는가. 각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각자가 승자다. 경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에 비해 운이 좋았던 것 같고, 한국 배우에게 호의 표해준 미국인들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윤여정은 특히 자신이 출연한 첫 영화의 감독 김기영에게 감사를 돌렸다. 그는 "김기영은 천재 감독이었고 살아계셨다면 행복해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두번째 연기상 아시안 여성


윤여정은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배우이자,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아시아 여성 배우가 됐다.

또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77세에 수상한 '인도로 가는 길'(1984)의 페기 애슈크로프트, 74세에 수상한 '하비'(1950)의 조지핀헐에 이어 세 번째(만 나이 기준 73세)로 나이가 많은 수상자이기도 하다.

영어가 아닌 대사로 연기상을 받는 건 아카데미 역사상 여섯 번째다.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감독 정이삭)는 여우조연상을 포함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주제가사 등 다른 5개 부문에선 모두 고배를 마셨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스티븐 연은 이날 시각효과상의 시상자로 나서 1991년 '터미네이터'관람 기억을 회고하기도 했다.

한편 감독상은 '노매드랜드'의 중국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에게 돌아갔다. 여성 감독으론 두번째, 아시아 여성으로선 첫 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