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행정부 입장 선회 후 각국·국제기구 지지 이어져

일부 선진국·제약업체는 반대…"새 제품 개발 동기 줄어"

WTO 회원국 합의가 관건…단기간에 생산 증대 어렵다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백신 공급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다른 주요국 및 국제기구의 지지 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물론 제약업계에서는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단순 특허권 행사 포기만으로는 단기간에 백신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AP 통신, 일간 가디언은 6일 백신 지재권 면제가 여러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며 주요 쟁점 및 이해당사자 간 엇갈리는 입장을 정리했다.

◇ 제약 특허 기간은 통상 20년…연장될 수도

특허는 혁신에 대한 보상으로, 경쟁자들이 특정 회사의 발견 등을 복제해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막는다.

미국에서 통상 약품에 대한 특허는 특허권 제출 당시부터 20년간 보호된다. 이 기간에는 경쟁 없이 제품 판매에 따른 이익을 누릴 수 있다.

보통 제약사들은 특정 제품을 개선하거나 사용을 확대하면서 추가 특허를 확보하는 만큼 독점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특허를 보장하는 이유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연구 단계나 동물 실험 단계, 인체 대상 시험 과정에서 실패한다.

이러한 실패에 대한 비용을 감안해 평균하면 통상 한 약품을 개발해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는 데는 10억 달러(약 1조1천억원)가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경쟁 없이 수년간 이를 판매할 수 없다면 리스크를 부담하면서까지 의약품을 개발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 미국은 왜 백신 특허 포기로 돌아섰나

지난해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코로나19 백신 및 다른 기술 등과 관련한 특허권 포기를 제안하자 100개국 이상이 지지를 표명했다.

반면 영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연합(EU)은 물론 최근까지 미국도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미국을 포함한 부유한 국가들은 제약업계의 연구 및 혁신을 주도해왔다.

글로벌 제약업체들은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고 정부에 막대한 세수를 납부하면서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약품을 공급해왔다.

제약업체들은 그동안 특허와 관련한 이 같은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정부에 로비를 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변경은 대내외적인 압박을 고려한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민주당 등은 더 많은 백신이 전 세계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바이든 행정부에 촉구했다.

인도 등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자 이를 도와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코로나19 백신 관련 특허에 한해 이를 포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 관련 다른 치료제나 기술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제약업계 실제 반대 이유는 '돈'

미국에서 제약회사들은 자체 개발한 약품에 대해 통상 1년에 두 차례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특허가 보호받는 기간에는 가격을 2배 또는 3배 올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를 통해 거대 제약업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기업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거대 제약업체 외에 수많은 스타트업도 혁신의 한 축으로 작동해왔다.

이들은 초기 연구를 위해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큰 수익이 없다면 투자를 끌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코로나19 지재권 면제가 이뤄진다면 제약업체들은 향후 수년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놓칠 수도 있다.

업계는 특허권이 그동안 새 제품 개발을 위한 혁신과 투자의 원동력이 돼 왔으며, 만약 백신 등이 개발되자마자 전 세계에 공유된다면 이를 개발한 동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에 관계없이 과학자들이 혁신을 추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기반이 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의 경우에도 수십 년간 세금 지원 등을 통해 발전을 거듭한 뒤 마침내 코로나19 백신에 활용됐다는 설명이다.

영국과 스웨덴에 기반을 둔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도 수익보다는 공익적 목적이 컸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주 종목은 폐암 등 각종 암 치료제로, 그동안 백신 생산 경험은 부족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맞이한 인류를 돕기 위해 회사가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 대규모 임상시험 수행 능력 등을 활용하기로 하고 옥스퍼드대와 손을 잡았다.

특히 팬데믹이 끝나기 전까지 코로나19 백신으로 수익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저소득 국가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