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에 이자 미지급 통보"…디폴트 우려에 신용등급 추가 하향

부동산 시장 큰 타격 예상…소로스 '중국 경제 붕괴' 경고도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15일 오전 중국 선전(深圳)에 있는 대형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 사옥 앞에서 성난 투자자 수십명이 시위를 벌였다.

지난 12일부터 연일 헝다 건물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투자자들이 이처럼 안달이 난 것은 최근 인터넷에서 헝다의 파산설이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다.

헝다는 150만명 넘는 주택 구입자로부터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택의 계약금을 받았는데 이들은 계약금도 돌려받지 못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무려 35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부채를 쌓은 헝다가 결국 파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부동산 시장에 큰 충격파가 닥치고 나아가 중국 경제에도 여파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축구팀에서 생수·전기차까지 사업 확장

광저우에서 1997년 설립된 헝다는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했다.

헝다는 올해 포천지가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서 122위에 올랐다.

창업자 쉬자인(徐家印)은 2017년 알리바바 마윈(馬雲)과 텐센트 마화텅(馬化騰)을 제치고 처음으로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자산은 2017년 430억 달러에서 현재 9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헝다는 본래 부동산 개발 업체지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한국 축구 팬에게도 많이 알려진 중국 최고 명문 구단 광저우헝다를 운영해왔다.

2019년에는 전기차 시장에도 뛰어들어 20억 달러(약 2조2천300억원)의 자본금으로 광저우(廣州)에 헝다신에너지자동차를 설립했다.

헝다의 사업 가운데는 2014년 전지현과 김수현이 광고에 출연했던 헝다빙촨(恒大氷泉) 생수도 있다. 이 생수의 수원지가 백두산의 중국명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표시돼 있어 당시 한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헝다는 생수 외에도 식용유, 분유까지 생산한다. 또 테마파크, 관광, 헬스케어 등으로도 사업을 확대했다.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리창안 교수는 "헝다는 신에너지, 스포츠, 금융, 등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너무 많은 분야로 확장해 유동성이 한계에 달했다"고 글로벌타임스에 말했다.

◇ 헝다 "유동성 엄청난 압박" 경고…"질서 있는 디폴트" 전망

헝다의 총부채는 1조9천500억 위안(약 350조원)에 달한다.

헝다는 차입에 의존해 부동산 사업을 벌여왔으며 최근 몇 년에는 인수합병과 대규모 신사업 투자까지 하면서 부채를 산더미 같이 쌓아왔다.

게다가 금융 리스크를 줄이고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국 당국의 각종 조치에 역풍을 맞았다. 특히 작년 말 당국이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는 것을 차단하는 '3대 마지노선'을 도입하자 헝다그룹을 비롯한 업체들의 자금줄은 급속히 말랐다.

국유 은행들이 앞다퉈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헝다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은 헝다의 지난달 이후 헝다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내렸다.

헝다그룹은 지난 13일 밤 낸 성명에서 최근 인터넷에서 퍼진 자사의 파산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회사가 현재 확실히 전례 없는 어려움에 닥쳤다"고 시인했다.

14일에는 홍콩 증시 공시에서 부정적 보도의 영향으로 9월 판매가 대폭 감소했다면서 "자금 회수의 지속적인 악화로 현금 흐름과 유동성에 엄청난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일 헝다 주식은 12% 떨어졌다. 이 회사 주가는 14개월만에 약 90% 추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도시농촌건설부가 이번주 주요 은행들과의 회의에서 헝다가 오는 20일 예정인 은행 대출 이자 지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헝다가 여전히 은행들과 이자 지급을 늦추고 채무 상환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보도 후 헝다의 주가는 5.4% 하락해 2014년 1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S&P는 이날 헝다의 신용등급을 'CCC'에서 'CC'로 또 다시 내렸다. 그러면서 헝다의 유동성 급감과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채무 구조조정 가능성을 지적했다.

결국 헝다는 디폴트 선언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신용분석업체 리오르그 애널리스트 제임스 스는 "중국 정부는 거품이 낀 부동산 분야의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드라이브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헝다에 구명 밧줄을 던져줄 가능성은 작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노무라 애널리스트 아이리스 천도 고객들에게 보낸 노트에서 "정부가 (민간기업인) 헝다를 구제할 인센티브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질서 있는 디폴트"가 되도록 감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부동산 시장 타격·일부 은행 영향 있을 듯

헝다는 지난해부터 부채 줄이기를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홍콩 사옥 등의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밝혔다.

헝다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부동산 '떨이 판매'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데 그 경우 전체 시장의 가격이 급락해 중국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헝다 사태가 유동성 위기의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로 번질 수 있다고 보는 투자자들도 있다.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분야가 중국의 가장 명백한 '회색 코뿔소'라고 칭했다.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말한다.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이날 "일부 대형 부동산 업체가 어려움에 빠졌는데 전체 업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부실 채권 위험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중국의 금융 시스템에 전반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피치는 14일 보고서에서 헝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여러 분야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디폴트로 부동산 업체 간의 신용 양극화가 심해지고 일부 소형 은행도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 다만 은행 분야에 대한 전반적 영향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이터통신은 일각에서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처럼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동산 시장의 추락이 가장 당면한 우려라고 전했다.

부동산이 중국의 고속 경제 성장에서 한 축을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헝다의 디폴트와 중국 부동산 시장의 타격은 중국 경제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헝다의 디폴트가 중국 경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와 언론은 헝다가 중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일축하고 나섰다.

차오허핑(曹和平) 베이징대학 경제학원 교수는 "소로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투자자로 이익을 얻기 위해 '중국 경제 붕괴론'을 퍼뜨린다"면서 "이런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글로벌타임스에 말했다.

이 신문은 헝다 위기에도 부동산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는 없으며 금융 리스크를 방지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y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