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멈춘 잠
                            김준철


노인의 귓구멍처럼
깊은 어둠으로
꾹꾹 눌러 채운 고요한
숲의 입구에
서 있다

눈도
소리로
내리지 않는
겨울만 부산한 그 밤

고양이가
느린 걸음으로
넘어서려는
의심의 순간

부러진 바람들이 쌓인
그 앞에 서면
짙은 먹 향이 저녁이 된다

숲과 겨울과 바람과
그리고 고양이

아버지가 잠든
내 집, 거실에서
잠들지 못한다


  오래전, 한국에 사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미국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가족과의 관계조차 서먹하게 만드는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사진으로 뵈었던 또 아주 가끔 한국을 방문했을 뵈었던 모습보다 훨씬 늙고 지치신 모습이었다.

 고집과 아집이 응집한 그의 어깨는 내가 늘 그리워하던 커다란 산은 아니었지만 대신 조금은 부담 없이 다가가 기댈 수 있는 작은 동산이 되어 있었다.

 다른 시간, 다른 하늘, 다른 문화, 다른 습관 그리고 그 안에서 어지간히 나이가 들어버린 자식과 만남이 썩 편하지만은 않으셨을 텐데도 아버지는 늘 곁에 계셨던 것처럼 애써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셨다.

 당시 10살도 채 안 되었던 아들 녀석은 놀랍게도 아버지와 쉽게 친해졌다, 그게 어른들이 소위 말하는 '피가 당긴다'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스스럼없이 할아버지를 끌어안고 연신 볼에 뽀뽀했다볼에 뽀뽀를 했다.

 이민자의 삶은 그리움의 연속일지 모른다. 뿌리를 옮겨 왔다고는 하나 어찌 보면 길고 긴 뿌리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연신 떠나 온 그곳의 무언가를 늘 그리워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우린 더욱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난 아버지가 잠드셨던 그 공간의 온기와 그 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