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저항으로 접종률 저조…매일 수만명 신규확진

메르켈 "미접종자, 다른 사람 보호할 사회적 책무 있어"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신속한 대응으로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던 독일이 백신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신규 확진자가 수만 명씩 발생하는 4차 확산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 독일 전역에서 백신 미접종자로 인한 신규 확진자급증으로 병원마다 코로나19 병동이 전면 가동을 넘어 과부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초기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나라로 꼽히던 독일이 위기를 맞은 원인으로는 저조한 백신 접종률과 함께 계절적 요인, 체코 등 주변국의 감염 확산, 정권교체기로 인한 리더십 부재 등이 꼽힌다.

그러나 보건의학 전문가들은 백신 미접종자들이 전국의 의료체계에 부담을 주는 이번 4차 확산의 가장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독일 최고 폐질환 클리닉 중 하나인 기센 대학병원 수잔 헤럴드 박사는 코로나19 신규 환자는 모두 백신 미접종자라며 이들이 4차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게 백신을 맞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백신을 못 믿겠다. 정부를 못 믿는다. 백신에 대한 공공정보 캠페인을 접하지 못했다 같은 대답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초여름 4차 유행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델타 변이의 강력한 전염력을 고려할 때 의료시스템의 위기를 피하려면 전 국민의 85%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헤럴드 박사는 그러나 "백신 접종률이 여전히 70%를 밑돈다"며 "4차 확산과의 시간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지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다"고 말했다.

옌스 슈판 보건장관은 이달 초 "지금 우리가 겪는 것은 무엇보다 백신 미접종자들의 팬데믹"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접종률이 40% 정도인 루마니아 등 주변 동유럽 국가들보다는 높지만 접종률이 90%에 육박하는 포르투갈이나 80% 정도인 스페인과 아이슬란드 등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최저 수준이다.

이처럼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것은 극우 성향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영향력이 강한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백신에 대한 저항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반대 시위가 벌어졌던 남부의 부유한 바바리아주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도 감염이 급증했다.

마르쿠스 쇠던 바바리안 주지사는 최근 TV 토론에서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바이러스가 있다"며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이고 하나는 대규모로 퍼진 독, 즉 백신 가짜정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권 교체기로 인해 강한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4차 유행 위기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차기 총리 취임 때까지 총리 대행 임무를 수행하는 메르켈 총리는 리더십 발휘가 어려운 상황인데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사회민주당(SPD)의 올라프 숄츠 총리 후보 측은 별다른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4차 유행이 급박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다시 강력한 방역조치에 나서고 있다.

동부 작센주의 피르나시는 최근 식당·술집 등 실내 업소 출입을 백신 접종자와 코로나19 완치자 등에게만 허용하고 이를 위반하면 업소에는 500유로(약 67만5천원), 위반자에게는 150유로(약 2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며 이 조치 후 백신 접종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 대행도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백신을 접종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온라인으로 참석한 아시아-태평양 비즈니스 회의에서 "우리는 백신을 맞을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또한 우리에겐 사회 보호에 기여할 의무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변화와 팬데믹은 모두 기하급수적인 과정이어서 초기에는 그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며 "기하급수적인 증가가 시작됐다는 걸 알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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