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의 '전두환 씨' 호칭…국힘, 조문 여부·메시지 수위 고심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고동욱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3일 정치권은 싸늘한 분위기였다. 여야 대선주자와 지도부 대부분은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6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 고인의 역사적 과오 평가에는 온도차를 보이면서도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모두 빈소를 찾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췄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권은 생전 과오에 대해 사과와 참회가 없었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내며 조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고인에 대해 '전두환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용진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자연인으로서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만, 대통령을 지낸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쉽게도, 고인은 진정한 사과와 참회를 거부하고 떠났다"면서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후 8여년을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유린한 것에 대한 참회도 없었다. 참으로 아쉽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불가"라고 밝히면서, 당 차원에서 조화나 조문 등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전씨의 경우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달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혀 표한 바 없어 '텃밭'인 호남 지역을 포함한 주요 지지층이 명시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당의 공식 페이스북·트위터 계정에 올린 메시지에도 처음에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는 문장을 포함했다가 이를 삭제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호칭도 이내 '전두환씨'로 수정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군사쿠데타 범죄자 전두환 씨가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며 "전두환 씨의 죽음은 죽음조차 유죄"라고 말했다.

여 대표는 "그가 29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사망한 것은 끝까지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사법 정의를 농단해온 그의 추악한 범죄가 현재 진행형 범죄임을 말해준다"며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같은 수구세력이 그를 단죄한 사법 심판과 역사적 평가를 조롱하며 역사와 사법 정의를 지체시켜왔다. 학살의 범죄에 묵인하고 동조해온 공범들"이라고 했다.

반면, 야권은 오전에 조문 여부부터 메시지 수위까지 고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국민의힘은 오후에서야 당 차원에서 조화는 보내고 당내 구성원들의 조문은 자유롭게 결정하기로 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후 SNS를 통해 "저는 전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며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고인이 군사독재와 민주화 시위 탄압,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살 등 역사적 과오를 남기고도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안혜진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전 전 대통령은 12·12 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역사적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전 전 대통령이 5·18 무력 진압 등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점을 일제히 비판했다. 여야 정당의 대선 후보 4명 모두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며 "중대 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은 점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으니 전두환씨라고 하는 게 맞겠다"면서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의 주범이다.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했다"고 규정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여의도에서 경선 주자들과 조찬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일단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께 위로 말씀을 드린다"면서 생전 과오에 대해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선 "상중이니까 정치적 이야기를 그 분과 관련지어 하기는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조문 여부에 대해선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2시간 30분 뒤 수석 대변인을 통해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리며 입장을 번복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는 SNS에서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인의 역사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국민께 사과하지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굴곡진 삶을 풀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국민과 함께 조문할 수 없는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보도자료를 통해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라며 "역사를 인식한다면 국가장 얘기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씨가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고, 광주 학살에 대한 사과도 없이 떠났다"며 "역사의 깊은 상처는 오로지 광주시민들과 국민의 몫이 됐다. 무엇보다, 이 시간 원통해 하고 계실 5.18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yjkim8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