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보내며 / 독자 기고]

김재남씨(Jay Kim·LA 거주)

한국 사람들 없는 곳에서 오손도손 이민 생활
지인 꼬임에 시작한 LA 비즈니스 불행의 나락
형제들 도움으로 새롭게 식당업에 도전 성공

올곧게 자란 남매 보란 듯이 아이비 리그 입학
굴곡의 인생사 ‘겸손’이라는 값진 교훈 얻어
인내와 근면 ‘코리안 아메리칸’ 자긍심 뿌듯

저와 아내(김명희)는 2003년도부터 플로리다주에 있는 네이플스(Naples)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겨울 휴양지로 유명한 바닷가 도시 입니다. LPGA(미국 여자프로골프) CME 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입니다.

딸 유라(Elaine Kim)가 2000년도 생이고 아들 유근(Nathan Kim)이가 2004년 생이니 애들은 그 곳에서 다 자란 셈입니다.

저희 가족 말고 한국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도시입니다. 애들이 다녔던 고등학교에도 다른 한국 학생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 둘다 전교생이 2300명 정도 되는 ‘걸프 코스트 하이스쿨’(Gulf coast high school)이라는 학교에 다녔는데 유일한 한인 학생이었습니다.

유라는 2017년도 말에 조기합격(Early Decision)으로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브라운 유니버시티(Brown University)에 입학했습니다.

고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줄곧 A 학점을 받았던 유라는 영광스럽게도 ‘발레딕토리안’(valedictorian·수석 졸업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어려서 부터 의사가 되고 싶어했고 그꿈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어서 지금 의대 진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유근이도 지난 16일 누나가 다니는 브라운 유니버시티로부터 조기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누나처럼 학교 성적이 뛰어났던 유근이는 누나의 영향을 받았는지 진학 목표 대학을 일찌감치 브라운 유니버시티로 정해놓고 지원했습니다.

아빠인 저는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카운티 정부의 IT 부서 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딸 유라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 부모로서 좀더 재정적으로 지원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LA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의 권유로 2017년에 플로리다에 식구들을 남겨둔채 혼자 LA로 와서 사업을 시작을 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조금만 더 공무원을 일하면 연금을 받으며 넉넉한 은퇴 생활을 할수 있었는데 그걸 포기해야 하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결심을 하고 시작한 LA 사업은 시작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말로만 듣던 사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당초 전 주인이 장담했던 수입이 절대 나올 수없는 비즈니스였던 것입니다. 잘 살펴보고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하는데 소개해준 사람 말만 믿고 덜컥 사업체를 인수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했던 4년 동안의 마음 고생과 몸 고생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심적 고통으로 생의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쯤 다행히 저의 형제들이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새로 시작한 식당 비즈니스로 다시 일어설수 있었습니다. 첫 사업의 실패는 오히려 재기의 발판이 됐습니다. 쓰라리기만 했던 고통은 ‘겸손’이라는 값진 교훈을 선물하며 비즈니스를 더욱더 굳건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딸 유라는 고맙게도 곤경에 처한 아빠의 큰 도움 없이도 씩씩하게 대학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학자금 일부라도 벌겠다고 일도 하면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졸업하는 유라가 우등 졸업생으로까지 뽑혔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딸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굴곡이 심했던 지난 수년간의 이민 생활을 돌아보며 과연 나라사랑이 뭘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미국 시민권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식구 모두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적은 없습니다.

얼굴 색이 다른 외국인들과 섞여 사는 이민자의 삶은 그래서 한결 조심스럽습니다.

작게는 식당에 가서 건네는 팁 액수부터, 이웃과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친절과 모범을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학교에서 여러 클럽 활동을 하던 아이들에게도 모나지 않은 리더십을 강조하며 키웠습니다. 이제 내년에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 생활을 정리합니다. 아들 유근이는 누나 유라가 있는 동부의 대학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제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LA로 오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활발한 학교생활로 한국 학생들이 없는 곳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자긍심을 빛내준 아이들. 비록 지독한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내와 근면으로 재기한 우리 가족…뒤돌아보니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2021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희망의 2022년의 문턱에 와있습니다.

비록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경제도 만만치 않지만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않는 우리 가족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김재남(Jay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