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줄 알았다. 21년 전, 그의 선택은 행복하기 위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당당히 맞서보려 용기를 냈지만, 이후 홍석천은 ‘연예계 1호 커밍아웃 연예인’으로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마련이나 시선이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석천은 “아마 ‘1호 연예인 타이틀’의 슬픔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얼마전 방송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늘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고 들어줬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부터 변화의 순간도 찾아왔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부모님의 격려와 응원이었고, 또 방송에서 “나? 대한민국 탑게이!”라고 외치며 활발히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이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홍석천은 사회문제 및 제도의 마련에 관심이 많다.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이태원 거리와 소상공인 살리기다.

그는 “힘들다. 지금의 이 시기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겪는 고통이라 생각한다”며 “지난 2년 여의 시간 동안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있다.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세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형식은 다르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연예인 홍석천에게 요즘의 달라진 일상과 2022년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점, 그리고 2022년 임인년 ‘흑호의 해’를 맞아 새해 포부를 들었다.

◇방송 그 후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하구나 알게됐죠”
지난해 한 방송에서 보인 홍석천의 눈물은 큰 화제였다. 그는 커밍아웃 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에 급급했다는 말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방송인 정형돈은 “나는 석천이형 만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이었을까? 반성이 된다”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방송이 큰 화제였다. 그 때 보인 눈물의 의미가 궁금하다
(정)형돈이가 그 얘기를 했을 때 충격이었죠. 연예인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 한마디가 툭, 가슴에 와 닿았어요. 대부분 저에게 (고민들을)다 쏟아내고, 휴지통처럼 뱉고 가면 그만인데…. 모처럼 내 얘기를 했던 시간인 것 같아요. 단 한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나에게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시기구나’ 라고요. 의미있고, 고마운 시간이었어요.

-부모님의 반응도 궁금하다. 아들의 눈물을 보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작은 누나가 전화를 했어요. (부모님이)많이 우셨다고. 내 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럴줄은 몰랐던거죠. 누나는 “내가 그때 너한테 심한말을 해서 미안해. 늘 고마워”라는 말을 해줬어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아빠는 일부러 별 말씀을 안하셨고, 엄마는 “그렇게 힘들었다고?” “우리 아들이 그렇게 힘들었어?”라고 하셨어요. 정말 위트있게 “장가 가라는 얘기는 엄마가 한 게 아니야. 아빠가 그런거 아니야?”라고도 하셨고요. 엄마는 늘 교회를 가라고 하셨죠. 가족들에게도 특별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물론이죠. 가장 고마운 게 전세계 교민들이 메시지를 보내세요. 그분들이 외국에 가면 대부분 기독교 모임이 많잖아요. “너무 많이 울었다”는 말이 가장 많았어요. 목사님들에게도 메시지가 왔어요. 하느님의 성경말씀을 보내고, 동성애에 대해서 오해가 많았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건 아니죠. 과거에는 정말 많은 기독교인분들이 저를 너무 싫어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나에게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요. 과연 자기의 삶이, ‘내가 홍석천씨를 비난 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했다고요. 욕을 보낼줄 알았는데 말이죠. 확실히 시대가 변했어요.

◇코로나19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역시 홍석천 답다. 유쾌하고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식당을 모두 폐업했다. 역시 많은 눈물을 쏟았지만 이는 또 다른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홍석천은 이를 두고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일자리 창출이 될 것 같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가게를 모두 접었다. 사업가 홍석천의 요즘의 일상이 달라졌을텐데
모든 가게 비즈니스를 다 접었어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어요. 대신 온라인으로 다 바꿨어요. ‘홍마담 샵’이라고 중소기업의 농어촌 축산물을 주로 다루죠. 코로나19 직후 운영해서 2년이 다 되어 가요. 또 ‘홍석천 샵’도 운영할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운동을 하면서 먹는 건강관련 식품이 있잖아요. 몸에 관심이 많은 시기니까. 그동안은 냉장고 안에 것만 팔았다면, 이제는 밖에 것을 소개해 보려고요. 이를 위해 몸도 만들었어요. 보디 프로필을 찍으려고요. 물건을 파는 사람이 건강해야 소개도 하죠.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려지는 것도 중요한 시대잖아요. 마케팅 채널이 없다면, 저같은 인플루언서가 해줘야 하고요.

-프로필 촬영, 정말 대단한 도전이다
제 꿈이 뭐냐면요. 10년 단위로 크게 짜는 게 있어요(웃음). ‘50이 넘으면 몸을 만들어야 겠다’라고 생각했거든요. 홍석천은 비즈니스도 하는 사람이잖아요. ‘모든 비즈니스 툴은 건강으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100세 시대인 만큼, 나는 가진 게 몸 밖에 없는 놈이니까. 몸으로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너무 보람됐죠. 프로필 촬영하는 데 너무 뿌듯했어~. 그래서 홍석천의 목표는 ‘50대 중 2등으로 예쁜몸 만들기’죠. 1등은 누군가 있을 거니까. 전 2등으로 만족합니다!

-이태원의 가게는 빈공간인가. 이 공간을 그만 둘 홍석천이 아니다
팝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이태원이 지금 상권이 죽었다고 해도,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있잖아요. 다시 시작하고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만큼, 이곳에서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려고요. 팝업스토어를 열어주고, 저는 또 이 공간에서 파는 제품들을 온라인으로도 홍보해주려고요. 시대가 변했어요. 내가 아무리 맛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코로나를 이길 수 없듯, 인건비를 이길 수 없더라고요.

◇이재명, 윤석열 등 20대 대통령 후보에게 바란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소상공인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차별금지법이다. 꼭 이것이 성 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란 걸 그도 알고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동시에 연예인 그리고 커밍아웃을 한 사람으로 대선주자들의 공약이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번 선거는 네거티브 공세 및 후보 각 개인사가 공개된 까닭에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대선을 불과 60여일 앞둔 지난 3일 이재명 후보는 계속된 정책발표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에 윤석열 후보는 돌연 일정을 취소하고 선대위 쇄신을 위한 장고에 돌입했다. 유권자인 홍석천 역시 이를 심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2022년의 또 하나의 화두는 대통령선거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나는 성 소수자죠. 매 대선마다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와요.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주의깊게 봐요. 그리고 발언에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도 충분히 알고있어요. 사실상 정치인들은 표 계산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대통령 후보가 저 정도까지, 언급을 해주는 것도 저는 큰 용기라 생각해요. 얼마전 그런것도 있었잖아요. 성 소수자의 입양문제에 대한 질문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순서가 앞서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입양문제를 꺼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동성애자와 살고있는 가족의 문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약간의 장치가 마련되야 결혼 까지 생각하지 않을까요? 때문에 최근 한 후보가 이에 대해 답을 못했던 것은 당연한거라 봐요.

-이 자리를 빌어, 대통령 후보에게 바라는 점을 말해달라
먼저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을 꼭 마련해달라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업주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있죠. 제도적 마련이 있어야 다시 출발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약은 제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것이 성 소수자 문제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죠. 동성애에 대한 생각, 이것 부터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입장이 아니라서 강 건너 불구경이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문제도 될 수 있거든요. 얼마전 한 어머니가 이런 고민 상담을 하오셨죠. ‘갑자기 우리 딸이 커밍아웃을 했어요’라고 말이죠. 50년 동안 남의 문제가, 갑자기 내 문제가 된 거에요. 어디다 물어봐야 할 지 모르겠고,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큰 문제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우리 모두 힘을 내요. 물론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크게 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꼭 외롭지만은 않더라고요. 지혜를 모으고, 노력을 함께 했으면 해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또 이렇게 살아지더라고요. 저 홍석천도 이렇게 힘을 내고 있잖아요. 시골 촌놈이 서울까지 와서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슬기롭게 우리모두 함께 극복해서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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