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을 불렀던 16세 소녀 아이유는 잊어도 좋다.

가수 겸 연기자 이지은(활동명 아이유)이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벗고 미혼모 연기로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영화 ‘브로커’에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미혼모 소영 역을 연기한다.

송강호, 강도원, 배두나 등이 함께 출연한 영화는 제 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전 세계 영화인의 축제로 꼽히는 칸 영화제는 내로라하는 여우(女優)들도 한 번 서기 힘들다는 곳이다.

가수로서는 정점에 섰지만 영화배우로서는 신인에 가까운 이지은은 10일 서울 용산CGV에서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 “살면서 이런 날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라며 “열심히 배우고 즐기고 오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연기자로 꾸준히 필모그래피 쌓아...‘나의 아저씨’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로잡아

실상 이지은은 신인시절부터 꾸준히 연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건 KBS2 드라마 ‘드림하이’(2011) 속 김필숙 역이다. 필숙은 스타의 꿈을 안고 경쟁을 펼치는 예술고 안에서 소름끼치는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큰 덩치로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당시 30㎏ 후반대의 왜소한 체구를 지녔던 이지은은 필숙 역을 위해 특수분장을 강행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수현, 수지, 옥택연, 함은정, 우영 등이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특유의 근성으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후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둔 뒤 시청률 보증수표인 KBS2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주인공 이순신 역에서 조정석과 함께 출연한데 이어 장근석과 출연한 KBS2 ‘예쁜 남자’, 김수현과 재회한 KBS2 ‘프로듀사’, 이준기와 호흡한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 등에서 꾸준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예쁜 남자’에서는 첫사랑 독고마테(장근석)에게 헌신하는 김보통으로, ‘프로듀사’에서는 고독한 속내를 숨기는 톱스타 신디로, ‘달의 연인’에서는 21세기 고하진의 영혼이 스며든 고려여인 해수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뽐냈다.

이지은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tvN ‘나의 아저씨’(2018)다. 이전 작품들이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에 기댄 측면이 강했다면 ‘나의 아저씨’에서는 세상에 상처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지안 역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나의 아저씨’는 ‘가수 아이유’라는 기존의 색을 깬 작품”이라며 “연기자 이지은에게 전환점을 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의 아저씨’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송출되면서 가수 아이유가 아닌 연기자 이지은의 팬덤은 더욱 공고해졌다.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팬데믹 기간 ‘나의 아저씨’를 시청하며 이지은의 팬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나의 아저씨’ 후반부 때는 이지은이 나오는 신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구애하는 연기자 이지은의 시대가 온 것이다.

◇30대는 미혼모 연기로 시작...송강호에게 칭찬받은 연기, 칸에서 평가 기대

만 29세.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살이 된 이지은의 30대가 미혼모 연기로 출발하는 것은 의미가 상당하다. 작은 몸집과 귀여운 외모로 여전히 ‘국민여동생 아이유’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지은이 연기자로서 성인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브로커’의 소영 역은 ‘나의 아저씨’ 이지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지안이 아직 사회에 채 물들지 않은 20대 초반의 상처입은 영혼이라면 소영은 한층 성숙한 어른의 이미지다. 이지은은 소영 역을 위해 처음으로 스모키 메이크업에 도전했다. 짙은 메이크업과 허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긴머리는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소영의 절박한 심경을 표현하는 또다른 수단이 됐다.

외모도 더욱 핼쑥해졌다. 이지은의 소속사 이담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이지은은 작품을 위해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역할에 맞게 다이어트를 하곤 한다. 이번에도 회사에 말하지 않았지만 다이어트를 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런 이지은의 노력은 대배우인 송강호가 먼저 알아봤다. 송강호는 “소영이 옥상에서 형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모니터링하며 이지은의 표현과 감정 전달 방식에 놀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지은은 “그날 촬영을 마친 (송강호)선배님께서 퇴근하지 않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장면 모니터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시고 차가 멀어져갔다. 제 인생을 통틀어 굉장히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집에 와서 부모님께도 자랑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통상 아이돌로 사랑받은 연기자가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에서 쌍끌이 인정을 받지 못한 것과 달리 이지은의 이 같은 행보는 할리우드 톱스타 레이디 가가를 연상케 한다. 퍼포먼스 가수로 유명한 레이디 가가는 영화 ‘스타이즈본’(2018)을 통해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여우주연상, 영화 ‘하우스오브구찌’(2021)에서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 평론가는 “아이돌로 출발해 아티스트로 성장한 가수 경력처럼 이지은의 연기 역시 경험을 통해 더욱 원숙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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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영조 기자 kanj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