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감염 오래가면 변이 축적 '진화압'으로 작용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 '네이처 메디신'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최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세를 보인다.

전파력이 강해진 오미크론 하위 변이 BA. 4, BA·5가 빠르게 퍼지는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존의 다른 바이러스보다 변이 속도가 빠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언제 끝날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마침내 중화 항체가 잘 듣지 않는 신종 코로나 변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면역력이 약해진 만성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이런 코로나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면역 손상으로 코로나19 환자의 하기도(lower airways) 등에서 항체 반응이 약해지면, 감염증이 오래가는 동안 바이러스가 여러 차례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텔아비브대 생물의학대의 아디 스턴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27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보인 진화 패턴은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첫해엔 대체로 큰 변화가 없이 느린 속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20년 말부터 여러 개의 돌연변이를 가진 코로나 변이가 잇따라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만성 코로나19 환자와 코로나 변이를 연관 짓는 다양한 가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연관성을 입증한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없었다.

스턴 교수팀은 어떤 인구 집단이든 만성 코로나19 환자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텔아비브 소재 소라스키 메디컬 센터의 만성 코로나19 환자들로 실험군을 구성했다.

이들 환자는 예외 없이 면역력이 손상돼 있었다. 면역 손상이란 면역계 일부가 고장나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를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은 채 이런 환자의 몸 안에 장기간 남아 있으면 재발성 감염의 위험도 높았다.

생물학 용어로 이런 환자는 바이러스 돌연변이를 만드는 '인큐베이터'(incubator)나 마찬가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의 체내에 오래 머물면서 돌연변이를 축적해 면역계에 적응했다.

돌연변이를 만들어 면역계 공격을 피한다는 뜻이다.

사실, 실험 결과는 선명한 결론에 도달하기에 부족하다.

면역 손상 환자의 허약한 면역계가 바이러스 돌연변이의 진화압(evolutionary pressure)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다.

그런데 비슷한 원리로 진화압이 될 수 있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바이러스 변이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또 만성 코로나19 환자 중에는 재감염 증세를 보이다가 다시 회복하는 사람도 있었다.

묘하게도 이런 환자는 면봉(swab)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폐는 심하게 감염된 상태였다.

과학자들은 폐에서 돌연변이를 만든 바이러스가 상기도(upper respiratory tract)로 되돌아와 감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어떤 경우이든 공통점은 돌연변이 형태의 바이러스가 포착됐다는 것이다.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건 아직 완전한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을 충분히 치료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작용 기전'(modus operandi)과 비슷했다.

스턴 교수는 "면역력이 손상된 사람은 본인의 감염 위험이 높은 건 차치하더라도 다음번 변이 바이러스의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라면서 "면역력 손상 환자를 더 잘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che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