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욕심이었다. 배우 수지가 20대 끝자락에서 만난 ‘안나’로 연기 인생에 새로운 2막을 열었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단숨에 ‘국민 첫사랑’으로 떠오른 수지는 드라마 ‘구가의 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스타트업’ 등을 통해 꾸준히 주연 연기자로서 얼굴을 비춰왔지만, 그룹 미쓰에이로 활동한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는 늘 수지에겐 숙제였다. 그런 수지가 ‘드림하이’(2011)로 연기를 시작한지 10년 만에 쏟아진 연기 호평에 얼떨떨한 마음을 내비쳤다.

늘 연기보단 외모로 주목받다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연기 칭찬에 “과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재밌다고 연락이 많이 왔다. ‘안나’는 정말 욕심을 많이 낸 작품이다. ‘안나’에 몰입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인생작을 만났다’는 말들이 꿈같고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와도 되나 과분한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로, 수지는 타이틀롤을 맡아 삶이 고단한 ‘유미’와 화려한 삶을 사는 ‘안나’까지 극과 극의 인생을 오가는 한 여자의 10대부터 30대까지의 모습을 섬세하고 밀도 높은 연기로 그려냈다.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서 수지가 집중한 키워드는 ‘불안’이었다. 눈 깜빡임 하나도 신경쓰며 연기했다는 수지는 “유미는 마음 속으로 거짓말이 들킬까봐 엄청나게 불안해한다. 유미의 불안을 잘 표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했다”며 “보여지고 싶은 게 많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나오게 되는 말투가 어떻게 보면 내 모습 중에도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고민한 지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 불안을 꺼내 유미 그리고 안나를 만들어냈다. “유미와는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내가 가진 불안과 화도 많다”며 웃으며 “유미를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내가 가진 불안과 화를 연구하고 표현하면 유미로서 또 다른 두려움과 불안들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미의 불안과 분노, 뒤틀림에 공감했다는 수지는 “유미의 내면에 있는 분노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유미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지만 공감가고 안쓰러웠다. 사람들도 유미에게 몰입해서 응원해줄까가 가장 우려했던 지점인데 잘 봐주신 거 같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유미가 겪는 고난과 불안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불안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우리 모두에게 유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래서 한동안 안 쓰던 일기를 다시 썼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열심히 썼다. 그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돌이켜봤다.

청순하거나 밝은 청춘의 표상을 주로 연기해 온 수지에게 ‘안나’는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어두운 인물이기도 하다. 스스로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수지는 “그래서 ‘안나’로 보여줄 모습이 실제 내 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느끼진 않는다. 대중에게도 수지가 이런 모습도 있구나 새로운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안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맞닿아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수지는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누가 봐도 욕심을 낼 만한 작품이었다”며 “‘뺏기지 말아야지’ ‘내가 해야지’ 욕심을 냈지만 막연했다. 결정했으니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 부담과 책임감을 이겨내고 ‘안나’로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지금, 오히려 수지는 담담하고 차분했다. ‘안나’로 받은 호평에 기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10대와 20대를 가수와 연기 활동을 병행하며 여러 기쁨과 환희의 순간과 함께 상처, 불안을 겪어왔던 수지는 의연했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늘 부담이 많다. 이젠 그 부담이 새롭게 느껴지진 않는다”며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칭찬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내 길을 묵묵히 가려고 노력한다”고 다짐했다.

어느덧 30대를 바라보는 수지는 “시간이 진짜 빠르다”며 “20대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움도 남는다. 30대엔 너무 열심히 살기보다는 쉬어가면서 일을 하고 싶다. 너무 달리기만 하진 않는 30대를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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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