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강풍·건조한 날씨 '3중고'…화재 발생 위험 당분간 지속

관광객·주민에 대피령…산림 상당 면적 소실

(서울=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유럽이 숨 막히는 산불로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폭염에 건조한 날씨까지 겹치면서 화마의 기세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AFP·dpa통신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큰 규모의 산불이 4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유명 휴양지 레스보스섬에서 전날 시작된 산불은 이틀째 계속됐다.

한때 주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자욱하게 치솟은 화염이 헬기와 소방대원 접근을 어렵게 하면서 진화도 더뎌진 것으로 전해졌다. 작업하던 소방관 1명도 다쳤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호텔 등지에 있던 관광객과 민가 주민 등 400여명을 상대로는 일찌감치 대피령이 내려졌다.

고령의 여성들이 비닐봉지에 소지품 몇 개만 챙긴 채 황급히 마을을 떠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고 AFP는 전했다.

북동부 에브로스 지역의 검은대머리수리 군락지로 유명한 다디아 국립공원 산기슭에서는 소방관 수백명이 불길을 잡기 위해 나흘째 구슬땀을 흘렸다.

이미 산림 피해가 적지 않은 상태에서 야생동물 일부도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스 스틸리아니디스 공공안전부 장관은 현지 언론에 "지형 자체가 험난한데다 바람이 자꾸 방향을 바꾸고 있어서 진화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남부 펠로폰네소스와 크레타섬에서도 화재가 맹위를 떨치며 주민들이 부랴부랴 보금자리를 잠시 떠났다.

현지에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보된 폭염 영향으로 산불 확산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 지역 기온은 42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그리스 기상청은 예보했다.

야니스 아르토포이오스 소방청 대변인은 "건조한 날씨, 고온, 강풍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스페인령 카니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에서도 불이 나 주민 580여명이 다른 지역으로 급하게 대피했다. 당국은 또 테이데 국립공원으로 불길이 접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등산객에게 몸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앙헬 빅터 토레스 카나리아 제도 주지사는 한낮 기온이 38도까지 오르고 있다며 "불을 최대한 빨리 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토에서는 갈리시아와 아라곤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을 잡기 위해 스페인 당국이 애를 먹고 있다. 남부를 중심으로는 가뭄과 고온 현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 화재 위험 경보는 최고 수준인 '극심'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이탈리아 근방 국경 지대 산불로 2천㏊ 넘는 산림 피해를 본 슬로베니아 카르스트 지역에서도 2천여명의 소방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1918년에 이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처리되지 않고 100년 가까이 남아 있던 불발탄이 행여 폭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 작업이 쉽지 않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인근 이탈리아에서는 강풍으로 불길이 번질 수 있어서 고리치아 주민 약 350명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소방대는 덧붙였다.

체코에서도 독일과 인접한 보헤미안 스위스 국립공원에서 실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약 7㏊가 소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은 올해 유럽에서 51만7천881㏊(5천178.81㎢) 면적이 화재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했다. 이는 지난 한해 동안 잃은 47만359㏊(4천735.9㎢)를 웃도는 규모이다.

wald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