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어쩌면 전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기간 확진자의 약 절반에 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최근 보도했다.

물론 공식 집계된 확진자 수는 이만큼 많지 않다. 하지만 뉴욕시립대(CUNY)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소강기로 여겨졌던 올해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 뉴욕 주민 150만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는 전 세계를 휩쓴 오미크론 대확산 때 뉴욕의 감염자 수 180만명에 근접한 것이다. 거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큰 유행이 또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뉴욕과 정반대 편인 서부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활하수 속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양을 파악해 확산세를 파악하는 데 쓰이는 하수 데이터를 보면 올해 1월 오미크론이 정점을 찍었을 때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감염자가 최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모두 입원 환자와 사망자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속도의 측면에서 보면 우세종이 새로운 변이로 바뀌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델타 변이가 처음 출현한 때부터 이 변이가 미국을 장악할 때까지는 6개월이 넘게 걸렸지만 델타 이후에 출현한 오미크론은 채 6주가 안 되는 짧은 주기로 우세종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오미크론의 새로운 하위 변이인 BA.5의 유행을 겪고 있다.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12만명 선에서 정체된 양상이지만 입원 환자와 사망자는 조금씩 상승하는 중이다.

NYT는 이처럼 유행에 뒤이어 유행이 찾아오면서도 물밑에서 이뤄지듯이 입원 환자와 사망자가 치솟지 않고 예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는 '엔데믹'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컴퓨터 기반 바이러스 학자인 트레버 베드퍼드는 현재의 상황을 엔데믹으로 규정하면서 만약 미국이 여전히 팬데믹 단계라고 한다면 당분간은 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드퍼드는 "만약 우리가 지금 여전히 팬데믹 단계에 있다고 말한다면 7년차에도 여전히 팬데믹일 것"이라며 "따라서 인구의 98%, 적어도 95% 이상은 어떤 형태의 면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물론 엄밀한 정의를 따진다면 현재의 상황을 엔데믹으로 부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엔데믹은 어떤 질병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팬데믹처럼 대규모로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의 각 기능이 작동하는 데 차질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특히 호흡기질환의 경우 엔데믹이라고 하려면 한 감염자가 1명 미만의 새로운 감염자를 전염시켜야 한다. 또 엔데믹은 통상 바이러스가 안정적이란 의미를 함축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여전히 급격한 변이가 나타나는 중이다.

베드퍼드는 또 현 국면을 엔데믹이라고 보더라도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엔데믹과는 양상이 사뭇 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에서 앞으로 매년 인구의 절반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연간 10만명씩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사망자 규모는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의 몇 배에 달하고, 당뇨나 폐렴, 신장 질환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보다 더 많은 것이다.

또 카이저 가족재단의 수석 연구원인 셀린 가운더는 앞으로 계속해서 매년 코로나19로 죽는 사람이 10만∼2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오미크론 대확산 이후 미국에서는 사람들의 삶이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상당 부분 돌아갔다. 주(州) 정부 차원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곳은 하나도 없고, 실제 거리나 상점을 나가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게 눈에 띄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기업은 재택근무를 출근으로 전환했고, 여행 수요는 급증하면서 항공권 가격은 예년 수준을 압도할 만큼 크게 치솟았다.

물론 여전히 대중교통 수단에서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하고, 어떤 대형 행사는 참석하려면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BA.5가 급속히 퍼지면서 다시 유행이 찾아오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팬데믹 대응을 지휘한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저명 인사들도 코로나19 감염을 피해 가지 못했다.

3년차를 맞이한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이 팬데믹이 하루빨리 과거의 일이 되기를 고대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의 공통된 희망일 것이다. 오미크론이 맹렬히 퍼지면서 주변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자신까지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우리는 팬데믹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제 막 '코로나19와 함께 살기'의 첫걸음을 뗀 것일지도 모르겠다.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