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폭탄 날리며 경고장…"푸틴의 전술핵·생화학무기 언급 농담 아냐"

美안보보좌관 지난주 "핵무기 사용 임박 징후 없어"…러 동향에 '상황 변화' 있었나

CNN "바이든 엄중한 인식…'핵사용시 전세계 재앙' 푸틴에 암시 효과"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황철환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핵전쟁으로 인류가 공멸할 위험성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든 영토 완전성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국가와 국민 방어를 위해 분명히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며 핵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아마겟돈'(성경에서 묘사된 인류 최후의 전쟁)에 빗대는 강한 비유를 통해 푸틴 대통령을 향해 고강도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미·러 지도자간 주고받는 '말폭탄' 전쟁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이다.

AP 통신과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상원선거위위원회 리셉션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고 "그가 전술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언급할 때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상황이 진행돼온 대로 계속된다면 쿠바 미사일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핵무기 사용의 직접적인 위협에 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존 F. 케네디와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아마겟돈이 일어날 가능성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동서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미국의 턱밑에 위치한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면서 불거졌다.

미국이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군사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등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전 세계가 핵전쟁 위기에 내몰렸으나 물밑 대화 끝에 쿠바와 튀르키예(터키)에 각각 배치된 러시아와 미국 핵무기를 모두 철수시키면서 극적으로 사태가 종결됐는데, 현 상황이 그때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되면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러시아 군 독트린도 문제라고 짚었다.

2010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러시아 군 독트린은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을 때'는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전력으로 공격해오는 적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약한 전술핵이라고 해도 한쪽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술적 무기를 손쉽게 쓰면서 아마겟돈으로 귀결되지 않을 능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체면이 상하는 것을 넘어 러시아 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푸틴 대통령이 어디서 이를 피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 할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푸틴 대통령의 '출구'(off-ramp)도 언급했다.

그는 "푸틴의 출구 차로가 무엇일까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그가 어디로 나가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CNN 방송은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리면서 푸틴 대통령이 과거 케네디 대통령이 경고했었던 것과 같이 '굴욕, 아니면 핵 사용'을 택할 수 있는 궁지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 현재 전략상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한 연설에서 "핵 강국들은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후퇴냐 핵전쟁이냐의 선택을 하도록 하는 대립을 피해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외교적 과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큰 고통을 겪다가 이제 막 추격을 시작했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집권 체제의 명운이 달린 이번 전쟁에서 승리 외의 결과는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까지 한 발언 중 러시아의 핵 위협 상황을 가장 엄중하게 평가한 언급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CNN은 이를 솔직하고도 뼈까지 시려울 만큼 매서운 발언이라면서 판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경고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갈등 고조 상황을 깊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언이며, 어떤 식으로든 핵무기를 사용하면 지구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푸틴 대통령에게 암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이 방송은 짚었다.

수십년 전에 끝난 냉전시대 이후 러시아와의 핵 전쟁 가능성이라는 무서운 현실을 맞닥뜨린 첫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서 압박감을 드러내는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블룸버그 통신도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러한 핵 위협에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지난주 발언과는 뚜렷이 대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가 올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부터 거듭 핵 위협을 가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재로선 핵무기 사용이 임박했다고 볼 징후가 없다"고 말했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에 직면한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WMD)를 사용할 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실제 러시아 측은 거듭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와 합병 조약을 체결한 뒤 한 연설에서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며 과거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한 전례를 거론했다.

그는 같은 달 21일에는 "우리나라 영토의 온전성이 위협받는다면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명백히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