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인생] 국민의힘 소속 탈북 국회의원 태영호
좋은 가문 출신 아내 제안, 두 자녀도 서방세계 자유 원해
북한서 형제·친척들이 돈 빌려달라 했는데 거절한 것 후회
진보-보수 치열한 경쟁, 북한에 없는 일…한국의 미래 보여

2016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태영호(60)는 한국 국회의원이다. 하루 중에 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그는 아내의 탈북 제안에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친척, 직장 상사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가족들과 계속 다투고 토론하면서 망명을 결심했다.

가문이 좋았던 아내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평양건설건재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 시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혜산사범대학을 졸업한 어머니는 소학교(초등학교) 교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당 간부가 아니었다.

-- 그 당시로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건가.

▲ 중산층 인텔리 집안이었다. 우리 집은 단층의 자그마한 집이었다. 방은 작았지만 큰 책장이 있었고 거기에 책이 가득했다.

-- 소득 기준으로 상위 1%에 들어가는 수준 아닌가.

▲ 그 정도는 아니다. 북한에서는 한국과 달리 교수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 우리 집은 상위 15% 정도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초중고시절 학업성적은.

▲ 학교는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쳤고 성적순 명단을 게시판에 붙였다. 나는 학급에서 1∼5등을 유지했다. 창전인민학교에서는 반장을 했기 때문에 소년단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소년단원은 붉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 장인 오기수가 오백룡(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의 조카라고 하던데.

▲ 그렇다. 당시 북한에서 오백룡은 서열로 거의 다섯 번째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친구 소개팅으로 아내 오혜선을 만났는데, 그녀는 오백룡의 조카인 오기수의 딸이었다. 당시 오기수는 군 정치 간부를 키우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 총장이었다. 한마디로 아내는 가문이 좋았다. 그녀와 30분 정도 이야기해보니 소탈하고 겸손했다. 외모도 마음에 들었다.

-- 부인은 남편의 어떤 점이 맘에 들었다고 하나.

▲아내는 내가 자기 힘으로 중국 유학을 거쳐 외무성까지 들어간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 아내도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인가.

▲ 평양외국어학원 4년 후배다. 우리 집 두 아이도 같은 학교를 나왔다. 스카이캐슬은 남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스카이캐슬은 더 높고, 이너서클도 강하다. 북한에서도 상류층에 진입하려면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부부도 어떻게 하든 아이들을 평양외국어학원에 보내려 했다.

-- 자녀들은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나.

▲ 큰아이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대학 재학 중이다. 북한에서 온 아이들일까 싶을 정도로 완전히 한국화됐다.

북에 남은 식구들 마음에 걸려

-- 탈북은 누가 제안했나.

▲ 아내였다. 북한에서는 외교관으로 나가게 되면 자식 1명을 평양에 반드시 둬야 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가 생겨서 큰아이가 영국으로 오게 됐다. 그때가 탈북 2년여 전인데, 아내는 "이것은 기적이다. 이 기적을 우리가 이용하지 못하고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먼 훗날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 이후 떠나자고 결정할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 얼마나 걸렸나.

▲ 2년 6개월 정도 걸렸다. 고민만 한게 아니라 집안에서 계속 다퉜다. 아내는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서 떠나자고 주장했다. 나는 반대했다. 북한에 있는 형제들, 보증을 서서 나를 영국에 보내준 (외무성) 선배들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녀들도 자유 세계를 원했다. 

-- 본인은 왜 입장을 바꾸게 됐나.

▲ 북한 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놓고 집안에서 토론하면서 서서히 생각이 변했다.

--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 내가 북한에 있을 때 형제나 친척들보다 돈이 좀 있는 편이었다. 북한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친척들이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그 정도는 돌봐줬어도 생활에 큰 축이 나지 않았는데, 도와주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후 북에 남아있는 장모님과 다른 식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마음에 걸린다. 

북한은 핵 포기 안해

--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전략적인 계산이 있다. 한미가 어떤 대응 조처를 해도 북한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은 전술핵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메시지라고 본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나.

▲ 김정은 체제가 존재하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한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하는데, 불가능하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두 가지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핵무장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체제가 무너질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정보를 유입시키고 교류도 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의견은.

▲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하면서 음지에서의 활동도 해야 하는데, 문 정부는 북한에 정보를 유입시키는 국정원의 모든 예산을 없애버렸다. 이는 김정은 정권과 대화해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내부 변화를 통한 붕괴가 아니고 지도자 간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나.

▲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도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면 무엇을 해준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인프라를 건설해준다, 항만을 만들어준다고 하지 말고 인도적 문제는(북핵 문제에서) 떼어서 보건 협력, 신약 지원 등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유는.

▲ 김정남은 김정은의 이복형이다. 김정일은 처음부터 김정남을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출생(정통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철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다. 김정철이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러 영국에 왔을 때 3박 4일을 호텔에서 같이 지내봐서 안다.

서방과 다른 한국 좌파

-- 와서 보니 남한의 정치는 어떠한가.

▲ 많은 사람이 한국의 정치가 실종됐고 양극화됐다고 지적한다. 자유로운 토론이나 경쟁 선거 시스템에서 살지 않았던 나로서는 남한에서 보수와 진보가 치열하게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이런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만큼 정치가 공개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는 없다.

-- 한국의 좌파에 대한 생각은.

▲ 한국의 좌파나 진보는 서방 국가들과 결이 다르다. 서방국가 좌파는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한데, 한국 좌파는 그런 것 같지 않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가 살아있는 기간에 내 발로 내 고향에 가보는 것이다.

☞태영호는 

1962년 평양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과정인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로 재직할 때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망명했다.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으로 근무했고 2020년 서울 강남 갑(甲) 국민의 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