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인생] 한국 정치사 산증인'킹 메이커'김종인 

"대통령들 후보시절, 당선후, 취임후 정책방향 일관성 없어"
"윤석열 정부, 비전 발표하고 비서실ㆍ내각 조속 정비해야"
"차기 국민의힘 대표, 권력에 취해있는 사람이 맡으면 안돼"

김종인(82)은 60년간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각 정당이 위기 시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후 무엇을 할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당선 이후 생각이 바뀌어서 일관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이른 시일 안에 비전을 제시하고 내각과 비서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에 대해 말해달라. 
▲ 아버지는 변호사 였다. 내가 4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할아버지(김병로)가 생계를 도와줬다.

--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 나는 확신이 없는 것은 절대 안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하지만, 애매모호하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윗사람이 뭐라고 해도 내 소신에 맞지 않으면 안 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한테 부탁하거나 굽신거린 적이 없다. 자기들(정당들)이 필요에 의해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수용 여부를 결정했을 뿐이다. 치사하게 자리를 바라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 비례대표 의원직을 많이 하지 않았나.
▲ 나는 비례대표 의원을 5차례 했다. 한 번도 비례대표 의원을 시켜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전문 분야(재정·조세)에서 소신대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 감각은 공부로 되는 게 아니다. 직관이 발달해야 한다. 나는 직관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역사책을 많이 읽으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의 75년 정치사는 알아야 한다.

-- 역대 대통령 중 성과가 있었던 분은 누구인가.
▲ 이승만은 대한민국 기초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한미 방위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분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파행했고 말년에 좋지 않은 국면을 겪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경제발전의 업적을 남겼다. 그도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몰라서 불행을 겪었다. 전두환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사람이다. 노태우 당시에는 소득분배가 잘돼서 중산층이 많이 생겼다. 경제 인프라도 건설됐다.

--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는 어떠했나.
▲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에 빠져서 한국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도 평가할 만한 게 없다고 본다.

-- 너무 가혹한 평가 아닌가.
▲ 김대중은 김정일과 6.15선언을 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것 외에 특별히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노무현은 수평적 문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통령을 그런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는 시대가 바뀌면 (저절로) 청산될 수 있다.

--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 말할 수 없다.

-- 역대 대통령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가.
▲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후보가 된 후, 당선된 후 등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 일관성이 없다.

-- 그 원인은 무엇인가.
▲ 계획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 역대 대통령들이 계획이 없었다는 것인가.
▲ 대부분이 그렇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외인 경우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박정희는 이 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철두철미한 생각을 가졌다.

-- 역대 대통령들의 성격적 측면은 어떤가.
▲ 전두환은 자기가 한번 결심한 것도 논리적으로 설득을 당하면 고치는 장점이 있었다. 노태우는 온화했고. 박정희는 머리가 예리했다. 문재인은 나한테 부탁을 해서 내가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 (고맙다는) 전화 한번 걸어오지 않았다. 박근혜에게도 도움을 줬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 전화통화도 없었다.

--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 용의주도하게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정치의 수준이 떨어지면 나라의 수준도 낮아진다. 

--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
▲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처한 상황으로 볼 때 또다시 경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박근혜 대통령과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어떠했는가.
▲ 2011년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되며 도와달라고 했다.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국회의원 후보 공천과정에서 박근혜와 갈등이 생겼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면 이를 입법할 수 있는 전문 의원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는 그런 사람들은 공천에서 배제하고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천했다. 그와 헤어졌다. 대선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실천할 테니 도와달라고 해서 또 도와줬다. 그러나 나와 상의도 없이 재벌개혁과 관련한 특정 주요 공약을 철회한다고 발표해 결별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도와달라던 그가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시절에 짜놓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한 글자도 남겨놓지 않고 모두 지워버렸다. 박근혜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 그 후에는 문재인을 도왔나.
▲ 문재인이 우리 집에 사흘간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민주당에 가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전략에 의해 민주당은 제1당이 됐고 여소야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무너졌으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문재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제일 잘했다는 것이 북한 문제였는데, 성과로 나온 게 없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출범 6개월밖에 안 됐으니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솔직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검찰총장에서 불과 1년 만에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준은 어떠한가.

▲ 국회의원 중 적어도 몇 사람은 큰 뜻을 갖고 자기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5년이 지났는데도 의회에서 지도자감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이다.

-- 국민의힘 당 대표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 여당의 입장에서는 2년 후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거기서 실패하면 여당은 희망이 없다. 이 선거를 효율적으로 치를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 권력에 너무 취해 있는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안 된다.

--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무엇이 있나.

▲ 방향을 빨리 설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무엇을 지향하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 내각과 비서실을 정비해야 한다.

-- 정치권에서 다시 부르면 나갈 생각이 있나.

▲ 더는 정치에 흥미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하려면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게 없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김종인은 
한국외국어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강대 교수,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