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의 공격 탓에 전기·수도·난방이 걸핏하면 끊어지는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의연한 모습으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가 10월 초부터 한 주에 한 번꼴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간시설을 타격하면서 정전, 단수가 밥 먹듯 반복되자 시민들이 보조배터리, 발전기, 촛불 등으로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병원 수술실에서 발생한 정전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70여발을 퍼부은 23일 수도 키이우의 한 심장병원 수술실에서는 14살 소년의 심장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 차례 폭발음이 이어진 직후 수술실 전등이 모두 꺼져버렸지만, 의사들은 즉각 발전기를 가동하고 손전등, 헤드랜턴으로 수술 부위를 비춰가며 5시간짜리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보리스 토두로우 심장병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주유소 10곳을 돌아다니며 기름 100갤런(378L)을 비축해뒀다고 한다. 이날 이 소년 외에도 1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고 토두로우 원장은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전역에 이른바 '천하무적 센터'(invincible center) 5천여개를 설치했다. 난방·식수·전기·인터넷을 제공하는 일종의 임시대피소다. 하지만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나마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키이우 아메리카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지하상가 바닥에서 5시간 동안 공부했다고 WP에 전했다.

이 대학은 전면 온라인 수업을 진행 중이어서 인터넷과 전원이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선 수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학생도 전원과 인터넷을 찾아 헤매다 이곳까지 오게 됐다.

그는 이날 3구짜리 멀티탭을 사용 중이었는데, 그가 사용 중인 소켓은 이 중 1개뿐이었다. 나머지 2개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 중이었다고 WP는 전했다.

전자제품 상점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전등, 보조배터리, 발전기 등을 사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 상점에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아 가격표를 보려면 휴대전화 전등을 켜야 했다고 한다.

WP는 우크라이나 미용사들도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머리를 깎고 있으며, 음악가들은 콘서트홀에 촛불을 켜놓은 채 공연한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 별다른 동요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WP는 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를 꺾기 위해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규모 시위나 국경 밖 탈출 행렬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위나 도피행렬은 오히려 최근 러시아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토두로우 심장병원장은 "러시아의 잔혹 행위가 우크라이나 사회를 더욱 단결시키고 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승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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