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간 시위 격화로 몸살…극우 시위 안 열려 충돌은 안 빚어져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누구의 거리인가?" "우리의 거리다!" "우린 침묵하지 않겠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7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영국 런던 하운슬로 자치구 브렌트퍼드의 거리에 수백 명이 모여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이주민 지원 센터가 있는 건물 앞에서 반(反)극우 난민 지지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다.
건물 앞에는 경찰 차량 여러 대가 세워져 있고 경찰관 수십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시위대 주변은 물론 길 건너편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지난달 29일 어린이 댄스 교실 흉기난동 사건 이후 영국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흉기난동범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소문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면서 반이민·반이슬람 극우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 소문이 허위로 밝혀진 이후에도 관계 없이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SNS를 타고 퍼져간 가짜뉴스에 극우 시위가 확산하고 이에 반대하는 맞불 시위가 벌어지는 등 나라가 극한대결로 쪼개지는 극심한 분열상이 연출된 셈이다.
이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벽돌을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상점 약탈도 벌어졌다. 경찰관을 폭행한 한 반이민 시위자는 이날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전날에는 극우 세력이 7일 또다시 대대적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있고 타깃으로 삼은 장소라며 여러 이주민 지원 센터를 나열한 명단이 인터넷에 돌았다.
인터넷에 퍼진 이미지를 보면 "더 이상 이민은 안 된다. 마스크를 써라"라는 문구와 함께 이주민 지원센터의 주소가 지역별로 담겨 있다.
경찰이 30여 곳, 나중에는 100여 곳에서 극우 시위가 벌어질 것에 대비하고 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이에 이들 지역에서 극우 시위에 맞서기 위한 맞불 시위가 조직됐다.
브렌트퍼드는 그중 하나다. 양쪽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긴장한 상태로 이곳을 찾았을 때 현장에는 반극우 시위대만 있었다.
시위 초반 현장에서 만난 소누 씨는 "인종주의에 반대하고 난민들에 대한 지지, 연대를 위해 참여했다"며 "이따가 극우가 여기에 온다고 하는데 그들은 우리가 더 많다는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서 이날 2시간가량 반극우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반이민 시위자는 눈에 띄지 않았고,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충돌은 없었다.
맞불 시위라기엔 맞불을 놓을 상대가 없었던 셈이다.
시위자들은 "극우를 저지하라", "혐오를 멈추라"고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었으며 일부는 "공동체는 혐오보다 강하다", "혐오보단 사랑", "난민은 환영받고 파시스트는 그렇지 않다"고 손으로 직접 쓴 팻말을 들었다.
극우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반이민 단체 영국수호리그(EDL)를 가리켜 "EDL을 싫어하면 경적을 울리세요"라고 쓰인 팻말도 보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경적을 울리고 시위대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소리가 몇 분 단위로 이어졌다.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만난 앨피 씨는 "사람들을 분열시키지 않고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대의 의미를 강조했다.
출범 한달 만에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키어 스타머 정부는 폭력 시위에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가담자들에 대한 사법 절차를 가속하고 있다.
'고속 재판'으로 이날 폭력 시위 가담자 3명에게 20∼36개월 징역형이 선고됐다. 수사당국은 폭력 시위 주동자들에 대해 테러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샘 씨는 당국의 대응에 대해 "처음에는 대응이 빠르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점점 더 통제를 찾아가는 것 같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체포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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