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비자금 스캔들 '치명타'…"당 바뀌어야", "정치개혁 의지로 결단"

'차기' 잠룡들 경쟁 본격화할 듯…"개혁 마인드 후퇴시키지 않는 분이길"

디플레이션 탈피·한일관계 개선 성과로 언급…"한일관계 정상화 더 확실히 해야"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내달 하순께 치러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전 총리관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바뀌는 것을 국민에게 확실히 보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민당이 바뀌는 것을 보이는 가장 알기 쉬운 첫걸음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라고 불출마 의미를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으면서 총리 연임도 포기했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며 현재 제1당은 자민당이다.

지난 2021년 10월부터 약 3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기시다 총리는 내달 선출되는 새 자민당 총재가 이후 국회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신임 총리가 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기시다 총리는 불출마 이유와 관련해 자민당 정치자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소속 의원이 일으킨 중대한 사태에 대해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지는 데 대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민당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간 유착, 당 '비자금 스캔들' 문제 등 정치 불신을 초래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면서 "정치개혁으로 나아간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무거운 결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불출마 의사를 표명한 이유에 대해선 "어제 몽골 총리와 통화로 여름 외교 일정이 일단락됐다"며 일본 명절인 이달 15일 '오봉' 기간이 끝나면 총재 선거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재임 기간 성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피 등과 함께 한일관계 개선을 언급하면서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로, 한일관계 정상화를 더욱 확실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정상이 정기적으로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를 재개하고 불안정한 동북아시아 안보 정세 속에서 한미일 공조를 강조해 왔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연말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검찰 수사가 진행된 이후 내각 지지율이 '퇴진 위기' 수준인 10∼20%대에 머물자 당 안팎에서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그는 외교와 경제 성과를 홍보하고 국민 1인당 4만엔(약 37만원)씩 세금을 줄여주는 감세 정책 등으로 반등을 노렸으나, 저조한 지지율이 연초부터 지속되면서 결국 총리직을 차기 자민당 총재에게 넘겨주게 됐다.

그는 다음 자민당 총재에 대해서는 "정치자금 문제와 정치 신뢰 회복 측면에서 개혁 마인드를 후퇴시키지 않는 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총재 아래에서 일치단결, 힘 있는 정책, 실행력을 바탕으로 진정한 드림팀을 만들어 달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공감을 얻는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제 정치인생, 정치생명을 걸고 한 명의 병졸로서 계속해서 과제에 대응해 가겠다"며 "다음 달까지인 임기 중에 총리, 총재로서 제 책임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직무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이어 취임해 이날까지 1천46일간 재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 중에는 재임 기간이 8번째로 길다.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 디지털상,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등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