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문가 고용하는 일본 직장인들
"퇴사는 무례한 일, 사직서 안받아줘"
대행사가 대신 내고 협상·분쟁 처리
"매일 12시간씩 일했어요.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퇴사하기가 어려웠어요."
일본 최대 통신 및 전자결제 회사에서 일했던 와타나베 유키(24)는 매일 회사에서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했고, 최근에는 밤 11시에 퇴근했다.
그렇게 매일 격무에 시달리던 와타나베는 위장병 등 건강 문제가 생겼다. 회사를 그만둬야 된다는 건 알았지만 사직서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일본의 상명하복 직장 문화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한번 입사하면 '평생 직장'으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퇴사는 '무례한 일'로 간주하고 상사가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이직하려 해도 다른 회사에서 좋은 평판을 받기 힘들 수 있어 커리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퇴사를 고민하던 와타나베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퇴사를 대신해주는 '퇴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CNN은 퇴사 대행사를 찾는 일본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CNN은 "일본 근로자들은 정시 퇴근을 하거나 휴가를 내는 것도 까다롭지만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며 "극단적인 경우는 상사가 사직서를 찢고 부하 직원을 괴롭히면서 회사에 머물도록 강요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CNN은 와타나베가 이용한 퇴사 대행사 '모무리'(일본어로 '더는 무리'라는 뜻)를 소개했다. 이 회사는 노동조합법에 관련 자격증명서를 받은 노동환경개선조합과 연계해 기업과 퇴사 교섭을 진행한다.
모무리 운영자인 카와마타 시오리는 지난해에만 1만 1000건의 문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퇴사 대행사는 사직서를 대신 제출해주고 회사와 퇴사 협상은 물론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변호사까지 추천해 준다. 이용료는 2만 2000엔(약 20만원)이고 아르바이트 등 시간제 근로자는 1만 2000엔(약 11만원)이다.
카와마타는 "어떤 사람은 사직서가 3번이나 찢겨서 우리를 찾아왔다"며 "무릎을 꿇고 빌어도 고용주가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직원이 그만두지 못하게 하려고 상사가 집까지 찾아와 초인종을 반복적으로 누르며 괴롭히거나, 저주받아서 퇴사하려는 것이라며 직원을 한 사찰로 끌고 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도쿄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오노 히로시는 "이제 많은 청년들은 더 이상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기성 세대의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회사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주저하지 않고 그만둔다"며 그러나 앞서 말한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에 제3자가 대신 처리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