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이스라엘군 접근 때 인질 죽여라' 지침 강화
생존 우려 하마스, 협상력 약화 감수하고 이판사판식 선택
강대강에 참사 우려…군사작전·인질살해 심리전 되풀이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전쟁이 인질을 둘러싼 더 잔혹한 국면에 들어설 조짐이다.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의 살해를 전쟁 전략의 일부로 공식화했으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타협 여지를 내비치지 않은 채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하마스는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 기습 때 납치한 인질들에 대한 관리 지침을 수정했다.
하마스 대변인은 최근 인질 6명의 사망 경위를 설명하며 올해 6월 관리 지침이 바뀌었다며 해당 인질들은 이스라엘군 접근 때문에 살해됐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군이 구출을 시도하면 인질을 죽인다는 게 하마스의 새 지침이라고 해석한다.
하마스는 올해 6월 이스라엘 부대의 특수작전으로 인질 4명을 빼앗긴 뒤 지침을 강경하게 변경한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 국경수비대 소속 대테러부대 야맘은 대낮에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의 주택가를 급습해 인질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패배의 재발을 막으려는 듯 하마스는 최근 인질 6명 살해에 따른 이스라엘 내 충격파를 부채질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마스는 인질들이 죽기 전 촬영된 동영상을 잇달아 배포하며 네타냐후 정권의 군사작전 실패를 주장했다.
인질 가운데 하나인 오리 다니노(25)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구출 시도 실패로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이스라엘 여론을 움직여 네타냐후 정권의 강경한 군사작전을 저해할 목적으로 강요된 심리전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이 같은 상황 전개는 작년 10월 발발해 11개월째 지속되는 가자지구 전쟁에서 인질에 대한 하마스의 극적인 접근 변화로 읽힌다.
하마스는 그간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 때문에 인질이 숨지고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이제 '불가피한 살해'를 대놓고 시인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궤멸 위기에 몰린 하마스가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생존을 궁극적 목표로 삼게 된 하마스가 인질이 줄어들어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양날의 칼'을 이판사판으로 집어 들었다는 것이다.
하마스에 정통한 정치분석가인 이브라힘 알마드혼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인질이 많이 죽으면 하마스의 카드가 약해질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그래도 하마스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심리전, 인질살해 압박에 굴하지 않고 하마스 전면해체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계속 밝히고 있다.
그는 인질 석방을 원하는 자국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에 "설교하지 말라"며 하마스 완전해체를 위한 군사작전을 지속할 방침을 강조했다.
하마스의 인질살해 협박과 네타냐후의 강경한 군사작전이 계속되면 새로운 참사가 되풀이되면서 전쟁이 더 잔혹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군은 주요 인질 구출작전 때 정예요원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로 위장해 은신처에 접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이 같은 선택지는 작전 반경 내 피아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큰 부수적 피해가 뒤따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작년 6월 인질 4명을 구출하는 작전에서는 근처 시장을 드나들던 팔레스타인 주민 274명이 교전 중에 숨진 바 있다.
현재 하마스가 가자지구 내 곳곳에 나눠 억류하고 있는 인질은 64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가 작년 10월 끌고 간 인질 251명 중에 117명이 협상을 통해 풀려나거나 구출됐고 나머지 인질 중 70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전개 양상으로 보면, 향후 가자지구 전쟁은 인질 석방과 연계된 휴전협상보다는 이스라엘의 계속된 군사작전, 하마스의 인질살해 심리전, 가자지구 주민 참사로 지속될 우려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인질 억류를 더는 휴전협상 지렛대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경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싱크탱크 위기그룹의 팔레스타인 선임 분석가인 타하니 무스타파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협상) 방정식에서 인질 의제를 뺐다"며 "현재 이스라엘 정권이 어떤 종류의 인질석방에도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