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차 보이던 당정, '제로베이스' 언급하며 한발짝 물러서
'2025년 증원 백지화' 주장 의료계는 공식 입장 없이 '신중'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오진송 기자 = 정부·여당이 '의대 증원 원점 논의'를 언급하며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이라도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포함해 의료 개혁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의 후 기자들에게는 "정부도 의료계가 참여하면 얼마든지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해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적정 규모 논의에 열린 마음으로 참여할 입장을 갖고 있고, 당도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대통령실 역시 2026년 증원 규모를 조정할 수 있으며 여·야·의·정 협의체도 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합리적, 과학적 추계를 갖고 온다면 열린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다"며 "의료계와 정부, 야당도 참여해서 제대로 논의한다면 환영이다.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여·야·의·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 의대 증원의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4자 협의체를 제안하면서 "대통령실에서도 공감하는 사안으로 안다"고 했다.
이처럼 의료공백 해법에서 온도차를 보였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잇따라 의대정원 재논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그동안 좀처럼 성사되지 못했던 의정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료계가 합리적인 안을 가져오면 2026년 의대 정원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입장이지만, 이날은 '원점 논의'나 '제로베이스'를 강조하며 4자 협의체라는 대화체를 구체적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전보다 한걸음 물러섰다는 인상을 준다.
이탈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병원을 지켜온 전문의 등 인력들이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의사 부족과 배후진료 차질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다만 전공의와 의대생을 비롯한 의료계가 2025년 의대증원을 백지화하기 전까지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당정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들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의료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의 한 사직 전공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고 언제든 (정부가)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럽다"며 "2026학년도가 아니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관계자 역시 "2025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되지 않으면 전공의와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거라 교수들이 협의체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듯하다"이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박단 비대위원장은 한동훈 대표의 '2026년도 증원 보류' 제안 후인 지난달 27일 자신의 SNS에 "입장 변화는 없다"는 글을 올렸고, 전의비는 지난 3일 호소문에서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다. 2025년 의대 증원을 취소해 학생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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